'스핑크스'라는 말은 그리스의 문법학자들에 의해 '묶다' 또는 '압착하다'라는 뜻의 동사 '스핑게인'(sphingein)에서 파생된 것이나, 그 어원은 전설과 무관하며 분명하지 않다.
전설상 가장 유명한 스핑크스는 보이오티아 테베의 날개달린 스핑크스로, 그것은 뮤즈가 가르쳐준 수수께끼(목소리는 같지만 발이 4개가 되기도 하고 2개가 되기도 하고 3개가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묻고 그 답을 요구하여 틀린 답을 말하는 사람을 잡아먹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고 한다. 마침내 오이디푸스가 정답(유아기에는 4발로 기고 자라서는 2발로 걷고 노년기에는 지팡이에 의지하는 사람)을 맞추자 스핑크스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이 이야기에서 스핑크스가 전지(全知)하다는 전설이 나왔음이 분명한데, 오늘날에도 스핑크스의 지혜는 속담이 될 만큼 유명하다.
미술품으로서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스핑크스는 이집트 기자에 있는 거대한 와상(臥像) 스핑크스로, 카프레 왕(제4왕조의 제4대 왕, BC 2575경~2465경)의 재위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그 왕의 초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이집트 역사를 통해 스핑크스는 계속 왕의 초상으로 사용되었다(그러나 아랍인들은 기자의 스핑크스를 아부 알 하울의 이름 또는 '공포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음). 스핑크스는 이집트인의 영향으로 아시아에 알려졌지만, 아시아에서는 스핑크스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메소포타미아에는 본래 스핑크스가 없었으나, BC 1500년쯤 레반트 지방에서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이집트(카이로) 박물관
카이로의 중심부에 있으며, 고대 이집트의 미술과 고고학적 유물의 수집으로는 양과 질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19세기 초부터 이집트의 고(古)미술품이 함부로 해외에 반출되자 이를 우려한 프랑스 고고학자 A.마리에트(1821∼1881)에 의해 1858년 카이로 교외의 불라크에 창설된 후 1902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그레코로만시대 초기에 이르는 유물 약 10만 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이집트 각지의 신전(神殿)유적이나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로서, 건축의 일부, 각종 조상(彫像), 부조(浮彫) ·벽화 ·공예품 등 당시의 생활 전반에 걸쳐 있다. 일괄 유물로는 제18왕조 말 투탕카멘묘(墓) 부장품이 가장 유명한데, 그의 황금마스크와 황금의 관(棺)을 비롯하여 호화롭던 파라오의 궁정예술을 잘 나타내고 있다. 카프레왕 ·멘카우레왕 ·람세스왕 등의 조상, 서기 ·귀족 ·궁정부인, 일하는 노예의 조상 등이 유명하다. 또, 역대 파라오의 미라를 한 곳에 모아 놓은 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