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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경상도)

의령 구름다리와 곽재우 생가(871)

사천에 멋진 선상 카페가 있다는 지인의 이야길 듣고 평일 하루 휴가를 내어 다녀올까 했는데 야경이 좋다기에

주일 오후 의령을 거쳐 사천 카페를 가기로 하였다.

새벽예배 마친 후 양지공원의 가로수에서.  가을을 알리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양지공원 중심.  예전에 있던 영렬탑에 만들어진 높은 동산이다.

우리집 거실에서는 아침해가 돋는게 보인다. 아침해 찍는게 일상이 되었다.

계수나무도 옷을 바꿔 입는다. 단풍이 곱지는 않은 나무이다.

교회입구에 있는 작은 열매가 탐스럽다.

광양불고기집에서 육회비빔밥을 먹고 의령에 도착한 시간이 3시.

인터텟을 보고 알게된 의령구름다리는 세곳으로 방향이 나있는게 특색이다.

이곳을 자주 지나는 지인은 별 볼품이 없다하지만 의령지역이 초행인 내게는 멋스럽기만 하다. ㅋㅋ

중앙에 기둥을 세우고 세방향으로 세워진 출렁다리이다.

우리나라에 출렁다리가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각자의 지역특색에 맞추어 세워진 출렁다리지만 세방향 교량은 전국유일인듯 하다.

식당에서 넘어져 몸이 편치않은 최권사는 다리 중앙까지 왕림.

교량아래에는 작은 유원지가 있고 고무오리배도 둥실 떠다닌다.

큰길 건너편 방향은 산행도 가능하고 산책로도 나있었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손을 잡고 ~~~~  보기가 좋다.

교량 아래에서 본 풍경이다.

세갈래 물줄기를 잘 이용한 교량이다.

잠시둘러보았지만 특이한 교량이어서 만족.

지인이 인근에 곽재우 생가가 있다기에 차를 돌렸다.

망우당 곽재우의 한시이다.

임진왜란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싸울때마다 붉은 옷을 입었다 하여 홍의장군이라 부른다.

생가터는 외갓집인데 규모가 상당하다.  곽재우의 부친은 승지에 관찰사까지 지냈다고 한다.

사랑채의 모습이다. 곽재우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지에 왕의 뜻에 거슬리는 문귀가 있어 파직당하였단다.

중앙이 안채 우측은 곳간이다.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장먼저 의병을 모집하여 왜병과 싸워 승리를 거듭

안채의 모습. 인진왜란후 벼슬길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우여곡절을 거치기도 했단다.

안채옆의 장독대에 우물터가 보인다.

여인들의 거주지 별당모습. 곽재우는 이순신이 죄없이 잡혀가고 절친 광주의병장이 죽는모습을 보고 더이상 관직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망우당은 곽재우의 호이다.  1552년 출생후 65세인 1617년 별세.

생가옆에는 600년된 은행나무가 서있다.

높이가 25, 둘레가 10미터라하며 지금도 굳건히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이다.

마을옆에는 현고수라는 역시 600년된 느티나무가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는 이 나무에 북을 매달아 치며 의병을 모집했다고 한다.

사천으로 가는길에 이병철생가가보여 차를 돌린다.

코로나로 인하여 출입이 금지되어 담밖에서 사진 한장.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 삼성그룹을 창시한 이병철. 누가 뭐래도 그의 업적은 한국 경제에 큰 획을 그은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