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제1일(2007.4.24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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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4(화) 오전 03:40
대전중앙지방 교역자및 교직자 해외연수를 가기위하여 새벽을 가르며 속속 교회앞마당 으로 차들이 들어온다.
공동대회장 전종열목사가 준비한 음식 보따리를 풀면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해외여행시 과일은 가져나갈 수 없는것을 깜박잊고 오랜지를 다량구입했던것.
부랴부랴 오랜지만 회수하여 각기 가져온 차량에 놓느라 작은 소동이 있었다.
겨우 탑승인원을 파악하고 출발하려는데 이번엔 주문한 떡이 도착하지 않는 불상사가....
떡집에선 출발했다고 하는데 도무지 도착을 않는다.
4시에 출발해도 6시까지 인천공항에 대기가 어려운 일인데 시간은 자꾸만 지나간다.
일단 출발기도를 시킨후 교회입구까지 나가보니 떡집아저씨가 교회를 찾지못해 설왕설래하고 있다 떡을 싣고 출발한 시간이 6시 20분. 말은 안했지만 출발부터 삐걱거린 느낌 이어서 불안스럽다.
안내책자와 간단한 요기를 하고 설잠을 자기 시작한다.

 눈을떠보시 수원즈음.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긴 어렵다. 서울로 전화해보니 6시 30분까지 도착하면 미리 수속을 밟았기에 출발이 가능하단다.
인천공항 도착시간이 6시 40분. 구장로님말대로 여유있게 출발하지 못한것이 다음계획땐 꼭 참고할 일이다.
속히 짐을 부치고 몇일전 새로 구입한 NICON D80카메라를 신고했다. 고가이고 신제품 이어서...
창문옆에 식구와 자리하고 아침을 먹고나니 벌써 후쿠오카공항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울서 1시간이 못걸리는 거리니 제주도와 별반 다름없는거리다.

제주도 아랫쪽이어서 더운날씨일줄 알았는데 19-20도이기에 여행하기엔 최적의 날씨다.
다만 날씨가 흐린것이 비가 올까 염려스럽다.
우리일행이 47명인데 일본엔 50인승 대형버스가 있어서 함께 여행을 할수 있어서 좋았다.
한국에서 함께한 신일관광 가이드. 32살의 노처녀인데 인상도 좋고 앳된모습이다.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하였고 일본 가이드생활을 6년째하고있다는데 차분하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안내를 잘해주었다.
우린 고속도로를 거쳐 첫번째 목적지인 나가사키로 이동을 하였다

나가사키는 아름다움과 가슴아픈 추억을 지닌 도시이다.
2차대전 종전을 앞당긴 원자폭탄이 투하된곳이기도 하고 "나비부인"의 무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첫번째 방문은 원폭자료관
이곳에 원자폭탄이 투여된것은 나가사키항이 군함등을 만들수 있는 군사지구 이기 때문이란다.
원폭자료관에 들어서니 맨 처음 平和란 단어가 눈에 띄인다.
이제 전쟁은 그만. 진정 평화를 원하는 글귀가 이곳 저곳에 쓰여있다.
피해지역의 참상은 말로 표현키 어려울지경이었다.
고열로 인하여 사람은 그대로 숯덩이가 되었고 철골구조물은 그대로 녹거나 뒤틀렸으며 한마디로 도시전체가 현체를 알아볼수 없도록 변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한발의 원자폭탄으로 거리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24만명중 7만여명이 사망했고 역시 7만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전시관에는 원폭투하를 알리니 피하라는 전단지부터 녹아버린 병, 찢겨진 의상, 구개골이 붙은 철모등 많은 물체와 사진이 소상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출발전 구준서장로에게서 들은 '나가이 다카시'박사의 사진과 유물도 있었다.
박사는 의과대학에서 조교수로 지냈는데 박봉이지만 부인가 오손도손 지내고 있었는데 원폭이 투하되었을때 부인은 부엌에서 숯더미처럼 죽음으로 발견되었고 박사도 원폭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부상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 5년후 사망했다고 한다.
이 박사의 전기를 통하여 구장로님은 일본에 대한 또다른 면을 보고 특히 이번코스를 기대하였던것 같다.
한국인도 수많은 사람이 사상당했는데 한국인을 위한 위령탑은 자료관과 투하중심지 사이 한켠에 조그마한 위령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것도 종전 한참후인 1979년에 세워진 것이어서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위령탑에서 모두 묵념을 드린후 원폭투하 중심지로 갔다.
그곳엔 불에 타죽은 아이를 안고있는 어머니 象과함께 원폭투하시간을 알리는 비가 세워져 있었고 투하중심지를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전쟁의 비극을 깨우치고 있었다.
약 5분정도 걸어서 이동한 곳에는 원폭투하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평화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원폭투하이후 영원히 풀 한포기도 자라지 않을 거라는 이곳에 공원이 생기고 푸른 녹음과 울창한 나무, 부수대가 자리잡았다. 더 이상 전쟁을 원치 않는 마음에서 지어진 공원은 커다란 공장터인듯 하였다. 기초석은 남아있는데 그 위의 건물은 형채도 없이 부서져 버린곳이다. 공원안에는 하늘을 가르치는 손은 원폭의 위협, 수평으로 내민손은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기념상이 자리잡고 있다.
평화공원 인근의 식당에서 일본에서의 첫번째 식사시간을 갖았다.
중국에서보다는 음식 먹기에 무리가 없었고 특히 좋은 쌀을 이용한 덕분에 밥은 아주 맛있었다. 일본에서의 나흘동안 기름진 밥 때문에 음식문제로 어려움은 없었다.
식사후 '오우라천주당'으로 가는데 전차가 눈에 익는다.
우리나란 교통에 장애가 된다하여 수십년전 없애버린 전차가 이곳 나가사키에서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어 있었다. 옛것과 새로움을 잘 조화시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는길에 비가 질척거리며 내린다. 일기예보엔 흐린날씨로만 나왔는데 비가와서 난감했는데 관광버스 운전원이 차에 비치된 우산을 꺼낸다.
족히 20개는 될정도였는데 일본인의 치밀함을 엿보는 계기가 되었다.
오우라 천주당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고딕식 건축물로 프랑스인 신부에 의해 1865년 세워졌다고 한다.
정식명칭은 '일본 26성인 순교성당'.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주교 추방령에 의해 일본인 20명과 외국인 신자 6명이 처형당했는데 그후 이들 순교자는 성인이 되었고 이곳에 기념관이 건립되어 졌다.
천주당옆쪽에 이어져있는 '글로버정원'은 일본에서 가장오래된 목조주택이 있는곳이다.
나가사키항을 중심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살던 곳으로서 스코틀랜드출신 토마스 브레이크 글로버의 이름을 따서 글로버 정원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원은 에스컬레이터등을 이용하여 관람하기 쉽게 꾸며져 있었다.
동산 곳곳에 아름다운집과 정원이 세워져 있는데 외국인들이 모여살기도 하였고 인근 항구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곳이 유명한 까닭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인 까닭이기도 하다.
1900년대초 글로버부인을 모델로한 나비부인과 미국 해군장교 핑카톤의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그린곳이다.
나비부인의 주인공역을 수차례한 일본인 오페라가수 '미우라 다마키'의 기념동상앞에서 그당시의 모습을 회상하며 사진촬영을 하였다.

정원입구에는 많은 기념품가게가 있었다.
일본은 모두 정찰제 판매를 하기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쇼핑을 할 수 있었다.
중국에선 부르는게 값이어서 흥정만 잘 하면 상당히 헐값으로 물건을 살 수 있었는데 흥정하는 맛은 없었지만 아무리 작은 물건도 모두 정찰제여서
흥정못하는 우리에겐 편하게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값을 싸게 느끼도록 999원, 2990원등의 가격표가 붙어있는데 이곳엔 1050엔, 10050엔등으로 표기되어 이유를 물었더니 세금을 포함한 가격표때문이란다.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는 '신치 중화가'
가이드도 편하게 관람하라하며 2/3정도만 구경하였다.
특이한것은 없었고 중국인들의 요리집, 잡화상등 중국색체가 묻어나는 작은 거리였다.

당초 아시아나에서 대한항공으로 옮기며 출발시간이 앞당겨져서 첫날여행은 조금일찍 끝났다. 잠도 잘 못자고 온 상태여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첫날 숙소는 '나가사키 베스트 웨스턴 프레미어호텔(095-821-1111)
737호. 방을 배정받자마자 모두들 숙소로 흩어져 들어간다.
피곤을 풀기위해 목욕부터 마친후 식당이 있는 스카이라운지로 모였다.
나가사키 도시가 양 옆으로 잘 보이는 곳이다.
비가내린탓도 있겠지만 일본의 도시는 참 음산한 느낌이다.
아파트는 별로 보이지 않고 단독주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모든 지붕은 검은 기와이고 벽면도 회색빛일색이어서 충충한 도시였다.
삼삼오오 떼를지어 식사를 하였다.
중앙교회 박홍규목사님 내외와 자리를 함께하며 교회의 비젼등을 나누며 식사를 하였다.
식사후 거리를 음미하고 싶어 호텔을 나서려 했는데 비가 더 많이 쏟아져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교회에서는 당회원이 모두 참석하였다.
직년부터 교역자, 교직자 수련회가 시작되었는데 직년엔 교회착공직후여서 목사님은 참석못하고 김장로와 나만참석하였다.
금년엔 준공을 마친후여서 목사님 내외가 참석하였고 당회원 모두가 교회를 비운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난 준비위원장이었고 김장로도 참석하길 원하여 모두 참석하여 우리교회입장에선 일본으로 당회원 수련회를 온 기분이었다.
김장로내외는 숙소로 들어가고 목사님 내외와 호텔을 둘러보았다.
예식장및 회의실을 겸한 호텔이어서 1,2층의 분위기는 훌륭하였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어 호텔로비를 둘러본 후 숙소로 들어왔다.

중앙지방 해외수련회는 금년이 두번째이다.
2006년 지방회시 내가 회계를 맡았을때 지방회비를 일부 상향조정하며 매년 1,000만원을 수련회기금으로 떼어놓아 목사, 장로해외연수를 추진하였다.
작년엔 교역자회장인 양만홍목사가 개인사정으로 물러나고 총무였던 빛과소금교회 박관희목사님이 주관하여 중국 장가계를 다녀왔었다.
금년엔 처음 시작을 교역자회에서 추진하다가 장로회장과 공동주관하는것이 좋겠다는 여론때문에 교역자회장과 장로회장인 내가 공동 준비위원장이 되었다.
하지만 금년엔 장로회장은 뒤늦게 합류한 때문에 사실은 교역자회의 주관으로 일이 진행되었고 2008년부턴 여행지 선정부터 장로회와 연합하여 일을 추진 하도록 하였다. 작년엔 미잡립교회 목사자가 많이 참석하였는데 금년엔 큰 교회목회자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분의기는 작년이 더 좋았던것 같다. 분위기 메이커 김갑수장로의 다양한 멘트와 처음 해외나오는 분들이 많았던 반면 금년엔 가이드가 워낙 지식이 많다보니 우리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질않아 우리만의 시간을 가질수 없었던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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