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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3. 성지순례

33. 골란고원,

멀리 구름에 가린곳에 헬몬산이 있다고 한다. 차창을 통하여 가끔씩 모습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의 최고봉인 헬몬산은 그 정상 높이가 2814m이다

헬몬산의 폭는 약 30km이며, 연중 약 1500mm 이상의 강우량이 기록되는 지역이다. 헬몬산의 강우량은 대부분이 눈으로 내리는데, 겨울 동안 내린 눈은 이른 여름철(6월)까지도 녹지 않고 쌓여 있다. 여름이 되면서 서서히 녹은 헬몬산의 눈들은 갈릴리 호수와 요단강의 수원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서 아침 이슬을 보기가 힘든데 이곳에서 아침 이슬을 볼 수가 있고, 이로 인해 과일이 풍성하고 맛있다. 산 위에는 십자군 전쟁 때 성 터와 요새가 있다.  '벧마아가 아벨'(삼하 20:15, 18)도 헬몬산 근처의 지역이였다. 여로보암 시대에 거대한 신전이 세워진 단(왕상 12:29; 왕하 10:29; 암 8:14)과 헤롯이 아우구스터스를 위하여 세운 로마 황제 숭배 신전이 있었던 가이사랴빌립보 등도 모두가 헬몬산과 관련된 지역들이다.

우리일행은 핼몬산 아래에 있는 골란고원을 향하여 갔다.
아래에서 보던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아주 넓은 평야가 계속되고 있었다.
땅도 비옥하여 다양한 식물이 재배되고 있었다.

 

골란고원은 평균 해발고도 1,000m. 다마스쿠스 남쪽에 있으며 서쪽은 요르단강(江) 계곡, 남쪽은 야르무크강(江) 계곡을 끼고 있다. 기후가 건조하지만 토지는 비옥하다. 게다가 안티레바논산맥의 남단에 솟은 헤르몬산(2,814m)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와 농경지를 적시기 때문에 채소 ·과일 ·밀 재배가 성하다. 성서에 나오는 고대 도시 골란은 현재의 골란 지역 서부의 하우란 지방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에는 가산 왕국이 세력을 폄으로써 북쪽의 비잔틴제국과 남쪽의 유목민들 사이에서 완충국 역할을 하였다. 1894년 프랑스의 유대계 금융가 E.로트쉴 남작이 이곳에 유대인 정착지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땅을 사들였고, 이어 미국 ·캐나다 ·유럽의 여러 단체도 같은 목적으로 땅을 사들였다. 그러나 정착지 건설계획은 아랍 주민들의 적대감과, 외지인의 정착을 금지한 오스만제국의 토지법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으로 있다가 1941년 독립한 시리아에 이양되었다. 1948~1949년의 아랍-이스라엘 전쟁 후 시리아는 골란고원의 서쪽 정상부를 요새화하였고, 1967년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 1970년대 후반까지 유대인 정착촌을 30군데에 건설하고, 1981년 일방적으로 이 지역을 병합하였다. 그러나 1967년 6월 결정된 이스라엘-시리아 휴전선과 1974년 5월 체결된 군(軍)의 분할협정에 의해 수정된 휴전선 때문에 동쪽 경계선은 불규칙하다.

갈릴리 연안과더불어 이곳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보고나 다름이 없는곳이다.
헬몬산에서 녹은 눈이 이곳을 통해 갈릴리바다로 가기때문에 이스라엘로서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지역이다. 예루살렘은 주어도 이곳은 내어줄수 없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유대인들)의 말이 이해가는 곳이다.
건너편 기옥이 있는곳은 요르단 지역. 멀리 시리아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골란고원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인근엔 많은 군 부대가 지어져 있는것이 보였다.
주형구, 구기자사모님의 행복한 모습
전종열목사님도 따라 해본다.
골란고원을 뒤로하고 갈릴리 바다로 향하였다. 사실 바다보다는 호수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성경에 바다로 나왔기에 바다란 호칭이 좋을듯.
한방울의 물도 아끼려고 저수지 바닥엔 이처럼 비닐을 깔아 놓았다. 이웃지역과의 전쟁뿐만 아니라 물과의 전쟁도 끊임없이 벌여야 하는 이나라 이다.
멀리 갈릴리 바다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