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에 있는 부석사는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은곳이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곳이기 때문인데 지리적으로 너무 먼곳이어서
찾길 주저하다가 이번기회에 이곳을 찾기로 한것이다.
우린 그냥 쉽게 부석사 무량수전이라 하였는데 이날 이곳을 둘러보니 부석(浮石)이란뜻이 돌이 떠 있다는 것이다.
이곳 지명이 부석면인데 무량수전 뒷편에 부석이라는 바위가 있었다.
신라고승 의상과 선묘라는 아가씨와 사랑을 이루는 과정과 이별속에서 선묘가 거대한 부석(떠오르는 돌)이 되어
의상과 연을 이룬다는 설화,,,
부석사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 부석사 홈페이지를 통해....
청바지는 얼마만에 이어보는것인지...
투박함때문에 청바지보단 등산복을 즐겨입었는데 작년 부부합창단 공연때 청바지를 구입하였기에 이번에 오랫만에 청바지를 착용하였다.
부석사는 불국사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보물이 많은 사찰이란다. 이 무량수전은 국보 18호.
무량수전은 여타의 사찰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는데 부처가 정면에 배치되어 있지않고 측면에 배치된것이 특징. 아마도 소백산을 향한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선묘설화 란?선묘설화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대목 입니다.의상이 당나라에 가서 공부할 때 양주성에 있는 어느 신도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집주인의 딸 선묘가 의상을 깊이 사모하였으나 의상은 의연하게 대하였습니다. 선묘는 의상의 굳은 의지에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공부와 교화, 불사에 도움을 드리겠다'는 소원을 바랐습니다.공부를 마친 의상은 그 신도의 집에 들러 인사하고 귀국길에 올랐는데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는 미리 준비한 법복과 여러 가지 용품을 함에 담아 해안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의상이 탄 배는 벌써 멀리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선묘는 물로 뛰어들며 용으로 변하여 대사를 모시고 불도를 이루게 해달라는 주문을 외웠습니다.신라에 귀국한 의상은 중생을 교화하던 중 676년 문무왕 16년 태백산의 한 줄기에 절터를 발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산적이 들끓는 곳이라 하여 만류했으나 의상은 직접 산적들을 만나 선하게 살 것을 당부하고 절을 짓게 해 달라고 했지만 산적들은 의상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이때 선묘룡이 나타나 번갯불을 일으키고 큰바위를 세차례나 공중에 들었다 놓았다 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산적들이 굴복하고 모두 의상의 제자가 되어 불사를 도왔습니다. 돌이 공중에 떴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이라 지었습니다. 1967년 5월 신라학술조사단이 무량수전 앞뜰에서 이 설화를 뒷받침하는 5m 가량의 석룡 하반부를 발굴한 바 있습니다.
무량수(無量壽)란?
한량없는 수명. 무량 상수(無量上壽).
아미타불과 그 국토의 백성들의 수명이 한량이 없는 일.
헤아릴수 없는 수명을 말합니다.
무량수전:불교의 아미타불과 그 국토의 백성들이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은 수명이란
이름이 붙은 전각이란뜻 입니다.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