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사적공원내 남간정사를 담으려 카메라를 챙겼다.
당초는 4월 9일 오후가 벚꽃나무등이 만개했을것으로 생각하여 찾기로 하였는데 4월 8일 부부합창을 가는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아내와 내가 병원신세를 지는바람에 일정을 늦추었다.
비보호 좌회전을 하다 급속도로 직진하는 차에 조수석을 바친것.
난 목요일 퇴원을 하였지만 조수석에 있던 아내는 통증등 후유증이 심하여 다음주에나 결과를 본 후 퇴원예정이다.
이날 4월 13일은 센트럴구역이 강천산으로 야유회를 가기로 한날인데 야유회는 다음으로 미루었기에
아침에 아내 병실에 들렀다가 우암공원을 향하였다.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 조선 숙종 때의 거유 송시열(宋時烈)이 강학하던 유서깊은 곳으로, 낮은 야산 기슭의 계곡을 배경으로 남향하여 건립되었다.
경내의 입구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된 기국정이 있고, 뒤편 높은 곳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남간정사가 있다. 남간정사는 정면 4칸 중 중앙 2칸 통칸에 우물마루의 넓은 대청을 드린 후 그 좌측편에는 전후 통칸의 온돌방을 드렸다.
그 우측편에는 뒤쪽 1칸을 온돌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온돌아궁이의 함실(函室 : 방바닥 밑에 직접 불을 때게 만든 방)을 설치하기 위하여 대청마루면보다 조금 높여 누마루로 꾸몄다. 대청에는 4분합띠살문 또는 판장문을 달았고, 온돌방에는 쌍여닫이 또는 외여닫이 띠살문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다.
구조는 건물 전면으로는 8각 장초석을 놓았으나, 계곡의 물이 흐르는 대청 밑에는 장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또한 건물의 네귀에는 활주(活柱 : 추녀 뿌리를 받는 가는 기둥)를 세워 길게 뻗은 처마를 받쳐 주고 있다.
기둥 상부에 건물의 내외방향으로 꽂혀 있는 양봉(樑奉)의 끝을 익공뿌리처럼 깎아 마치 초익공(初翼工)처럼 보이며, 지붕틀은 5량가구로서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뒤편 기슭에서 흐르는 계곡 물을 이 건물의 대청 밑을 통해, 앞에 마련된 넓은 연당(蓮塘)에 모이도록 하여 경내의 운치를 한층 더하여주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시대 별당건축의 양식적인 측면과 함께 우리나라 정원 조경사에 있어서 독특한 경지를 이루게 한 계획으로 그 의의가 크다.
시험보는 날
나도 수험생인데 아이들이 교수님, 교수님하면서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