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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또 잊을 뻔 했습니다(스크랩)

Injury Time-미안합니다. 또 잊을 뻔 했습니다

  2011년 1월 31일은 한국 축구사에 있어 오랫동안 회자 될 것 같습니다. 2000년 우리 곁에 다가왔던 한 위대한 축구 선수가 태극전사의 붉은 유니폼을 반납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 한참이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누비는 모습이야 볼 수 있겠지만, 캡틴 밴드를 차고 붉은 투혼을 발휘했던 박지성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없음에 많은 사람들이 아쉬운 탄식이 내뱉었습니다.   그래서 또 잊을 뻔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박지성 선수보다 먼저인 1999년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12년이란 세월 127번의 A매치를 끝으로 은퇴한 당신을 또 잊을 뻔 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워낙 별의 밝음만 좇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치부하기엔, 당신이 보여준 12년 세월 동안의 감사함은 결코 박지성 선수에 비해 가볍거나 덜하지 않습니다. 그런 당신이기에 고국도 아닌 먼 카타르에서 짧은 현지 기자회견을 끝으로 안녕을 고했던 우리들이 참 많이 미안합니다.

당신은 행운아이면서도 불운아였습니다. 한국 축구가 가장 행복한 시기 전성기를 구가해 많은 혜택과 영광을 누렸지만, 그 옆에 박지성이란 또 다른 영웅의 존재로 인해 그리 많이 빛나지 못했습니다. 박지성 선수만큼 열심히 뛰었고 한결같았으며 든든했던 당신이지만 우리의 박수와 함성은 그에 합당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도 참 많은 일을 그리고 대단한 일들을 해냈는데 말입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차두리 선수와 훈련 중 부상을 입어 본선 진출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도 밝게 웃으며 걱정하던 동료들을 안심시키던 모습, 2006년 월드컵에서는 팀을 위해 줄 곳 지켰던 왼쪽 대신 익숙하지 않은 오른쪽에서의 임무도 선뜻 받아들였던 모습,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 후 박지성 선수와 가진 맞대결에서 볼을 빼앗겨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뒤 그가 내민 손을 외면하지 않고 잡아주던 모습, 낯설고 어색했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생활도 단 한 마디의 잡음 없이 꼿꼿하게 해내고 있는 모습까지, 정말 10년 넘는 세월 당신은 축구와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도 열심히 뛰었습니다.

  다시 돌이켜 꼽아보니 참 한결 같았습니다. 큰 부상도 없었고 말썽이나 부진도 없었습니다. 아마 한국 축구 역사상 당신처럼 꾸준히 그리고 성실히 축구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지 싶을 정돕니다. 그런 성실과 꾸준함이 당신에 대한 고마움을 잊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없으면 어색하고 이상한 존재가 바로 당신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 고마움을 쉽게 지나쳐 버렸나 봅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의 고마움은 그 사람이 떠나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이렇게 늦게야 그간 당신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느끼게 됩니다. 지난 아시안컵 3-4위 결정전에서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가 끝난 후 후배들이 당신을 헹가래치던 순간을 보고야 그간의 고마움과 미안함이 몰려 왔으니 정말 미안합니다. 그러곤 금방 또 잊고 떠나는 박지성 선수에 대한 아쉬움에만 빠져 있어 또 한 번 미안합니다. 당신도 우리들을 향해 안녕을 고했는데 말입니다.   지난 12년 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쉼 없이 달렸던 당신의 축구에 진심어린 경의와 무한한 존경을 표합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즐길 줄 알아야 그리고 한눈팔지 않고 성실할 줄 알아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교본이 되어 주신 것 또한 고맙습니다. 하늘이 준 재능보다 땅 위에서 일군 노력이 더 값지게 쓰일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당신이 헌신한 12년 세월을 보고 자랄 후배들은 물론이고 일반인인 우리들도 그 한결같음과 성실함을 배워 각자의 자리에서 더 올곧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당신이 그라운드에서 쓰러지고 지치고 힘들어 준 덕분에 우리는 참 많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더는 당신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12년이란 시간들, 가슴 깊이 귀하게 간직하며 꺼내 보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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