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하여 세조에 관한 관심이 생겨 세조의 무덤 광릉을 가보고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조선시대 왕의 이름은 세종 등 ‘종’으로 끝나는 왕과 세조 등 ‘조’로 끝나는 이름으로 나뉜다. 조선 27대왕중 ‘종’으로 끝나는 왕이 18명, ‘조’가 7명, 연산, 광해는 ‘군’으로 끝난다. 이름을 정하는 것은 본인이 아니라 후대 조정과 왕이 함께 결정한단다. ‘조’로 끝나는 왕은 나라의 기틀을 크게 바꾼 왕, 왕조에 큰 공이 있는 자 ‘종’으로 끝나는 왕은 일반적인 왕들에게 붙는 묘호.
세조가 ‘조’인 이유는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수많은 사람을 숙청했지만, 왕권 강화, 국가체제 정비 등의 공로가 인정되었기 때문. 세조는 후반기 불교에 귀의하며 속죄의 길을 걸었고 왕릉을 보면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왕릉과 달리 입구에서 능까지 500여 미터의 길은 자연 그대로이고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도 통상 20여 개의 석상(문,무인. 동물 조각) 이 있으나 세조의 능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 관도 통상 쓰는 석관 대신 곧 썩어질 것이라 하여 나무관을 사용했단다.
세조의 광릉은 500년간 숲이 그대로 보존되어 훌륭한 유산이 되었고 고종과, 조선 마지막 왕 순종묘역에는 황태자 영친왕, 황세손 이구,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 의친왕, 왕의 후궁까지의 묘역이 조성되어 가족묘 성격을 띠고 있다.

광릉수목원과 길 하나를 두고 광릉숲이 있다.

박태기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릉 27기. 기회되는대로 왕릉을 가보고 싶다.

세조왕릉만 유일하게 하마비가 있단다.

두곳의 숲길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자연 그대로 이다.

입구에서 릉까지 500여미터의 길은 자연 그대로이다.

ㅟ엄거리며 오르기 좋은 길이다.


양 옆에는 자연 그대로의 숲길.


꾸밈없이 걷는 길이 이채롭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대부분의 왕릉엔 석상이 있는데 광릉엔 아무것도 없이 수수하다.

제사를 드리는 정자각.

정자각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정희왕후의 릉.

인쪽에 세조의 릉이 있다.

와이드 화면으로 두 릉을 잡아본다.


정자각 내부.

두 무덤사이에 계곡이 흐르고 있다.

무덤의 주인공을 알리는 비각.

무덤이 두개이기에 저ㅓㅇ자각도 두개여야 하는데 경비절약을 위하여 한개만 세웠단다.

오던길을 되돌아 본다.

나갈때는 산책로를 통하여~~~

수백년 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싹도 아름답게~~~

엄청난 나무들.

하늘을 찌를듯 높은 나무가 자란다.

스마트폰과 고목.



광릉숲 구경을 마치고 산정호수 안시에서 1박을 하였다.

산정호수 아래에 있는 한화리조트. 이번이 두번째 투숙이다.


자역스럽고 멋진 리조트이다.



객실마타 테블릿pc가 있어 안내사항을 볼 수 있었다.

객실모습.


실글침대 두개지만 아내는 밖에서~~~

산정호수를 보러갔다.

조금 험한길로 올랐는데 갈증도 나고 힘이 들었다. ㅋㅋ

산정호수. 가믐이 있었는지 물이 많이 줄었다.

리조트가 내려다 보인다.


산책로.



궁예의 말탄동상이 보인다.


리조트에 저녁이 깔린다.

로비의 모습이 아름답다.


저녁은 부대찌개를 사먹으려 했는데 문을 닫았단다.

포천이동갈비는 지난번 먹었기에 패스하고 신라면으로. ㅋㅋ

밤이되자 카페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이튿날 새벽. 일출을 보려고 산정호수를 향하였다.

어둠이 깊이 내리는 새벽. 가로등불이 거리를 밝히고 있다.


흐린날씨탓에 일출은 포기. 아쉬웠다.

금년이 산정호수 댐을 막은지 100주년 되는 해라한다.

100주년 기념 상징물.



부페는 주말및 공휴일에만 해당되고 아침이 포함된 이벤트 티켓을 구입하여 육개장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