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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다리(퍼온글)

클린트이스트우드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2009/03/07 오후 5:10 | 매디슨 카운티 다리
 
    캔사스의 시골 길을 달려서 캔사스 시티로 들어와서 시내를 한바퀴 둘러보는데 언덕위에 세워진 도시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곳은 미조리 주 그리고 캔사스 주 두곳에 나뉘어  있는데 캔사스 주에 있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운듯 하다.

    시내를 흐르는 냇물의 모습이 잘 정돈되어 있고 언덕위의 전원주택을 연상시키는 도시구획이 대단한 선견지명을 가진 엔지니어들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시냇물은 수량이 풍부하고 자연미 넘치게 구불구불한 모습으로 단장이 되어 있는데 무척 오래전 만들어진 그 모습이 놀랍다. (청계천을 새롭게 만든데는 캔사스  시 개천도 모델로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는듯)




상당히 긴 개울인데 나무랄데 없이 아름답고 수량이 풍부하고 수풀이 우거진 강변은 환상적이었는데 나중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예 여유가 되면 캔사스 시티로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름답고 깨끗이 정돈된 언덕위의 도시였다.
사람들도 친절하였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개울의 가장자리는 수풀이 우거져있고 아름다운 곳에서 살면 마음도 아름다워지는 것이 분명하다고 느껴진다,
다운타운은 흡사 샌프란시스코의 언덕 길을 연상시킬 만큼 언덕에 이뤄졌으나 도시 전체의 모습은 매우 안정되고 깨끗하였다.


35번 고속도로 북쪽으로 올라갔다. 교회건물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안내소 역활을 하는 건물이 나오고 안에는 주민들이 기증한 갖가지 물건들을 전시해 놓고 판매하는 상점을 겸하여 있는 안내소. Exit 52번에 다다르니 영화배우 존웨인 출생지라는 간판이 고속도로 옆에 크게 있으며 메디슨 카운티 가는 길이라고 표기되어 쉽게 찾아간 안내소...

      미국 사람들은 뭐든지 절약하고 아끼는 습성이 있으며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집에서 치워야 할것은 모아두었다가 차고세일을 하거나 아니면 기증하는 좋은 풍습이 있다.

안내를 해주던 신사와 오랜동안 얘기를 나누다가 지도를 받아들고 브릿지를 찾아 떠났다. 어떤 다리이길래 수많은 선남선녀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인지 알아봐야 겠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황야의 무법자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렬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하고 감독한 영화의 스탭은 다음과 같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로버트 킨케이드 역
메릴 스트립 Meryl Streep...프란체스카 존슨 역
애니 콜리 Annie Corley...캐롤라인 역
빅터 슬레작 Victor Slezak...마이클 존슨 역
짐 헤이니 Jim Haynie... 리차드 존슨 역
필리스 라이온스 Phyllis Lyons... 벳티 역
데브라 몽크 Debra Monk... 마지 역
사라 캐서린 슈미트 Sarah Kathryn Schmitt... 어린 캐롤린 역
크리스토퍼 크룬 Christopher Kroon... 어린 마이클 역
리차드 라지 Richard Lage... 변호사 역
미쉘 베니스 Michelle Benes... 루시 레드필드 역
앨리슨 위거트 Alison Wiegert , 브랜든 밥스트 Brandon Bobst
카일 이스트우드 Kyle Eastwood , 조지 오리슨 George Orrison
Karla Jo Soper
감독...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Holliwell "홀리웰" 다리 표지가 보이고 나는 비포장 도로를 향해 오른편으로 꺾어져 들어갔다.

먼지를 일으키며 어린시절 학교 다닐 때 걸어다녔던 한국의 "신작로"와 같은 모습이어서 신바람이 났으며 어린시절 추억을 회상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구불구불한 신작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드디어 신작로 길 왼편에 메디슨카운티 다리가 눈앞에 나오고 저곳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는데 지금은 사용되지 아니하고 옆에는 새로운 길과 다리가 만들어져 지금은 이곳의 사적지로서 보존되는 유서깊고 아름다운 다리가 되었다.이러한 지붕이 덮인 다리는 미국전역에서 볼 수 있는데 지금도 사용하는 곳이 많고 특히 교통량이 적은 산간지방에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기억에 뚜렸한 것은 Maine "메인"주의 어느 산골 시냇를 건너는 다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생각나는데 다리에 지붕을 씌운 것은 모양이 아닌 목재로 만들면서 다리를 허공에 지탱해 주는 역활을 하는 골조인 것이다.
영화가 히트를 한 난 이후에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놓기 위해 아름다운 낙서 그림을 그려놓았다~!

이곳 일대에는 모두 6개의 지붕덮인 고전적 다리가 있으나 그중 가장 대표적인 Holliwell "홀리웰" 다리의 모습이다
. 거리가 거의 칠 팔십리 떨어진 곳도 있어 6개 다리 모두를 답사하려면 2 틀이 부족할 듯...
조선시대 고종임금을 섭정하던 대원군 시절로 올라가 조선후기에 이곳에 지어진 메디슨 카운티 다리로 유명해진 Holliwell Bridge '홀리웰 다리'의 내부는 사진처럼 튼튼한 목재를 커다란 나사못으로 고정시켜 만들어 졌는데 이편서 저편까지 중간부분의 교각이 없이 공중에 만들어진 옛 역사가 살아 숨쉬는 모습 그대로였다.이곳으로 다니던 역마차와 발동기 소리를 내며 달리던 포드 자동차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바닥을 덮은 목재는 대각선으로 놓여 있는데 아마 위 아래 두겹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아래편은 반대 방향의 서로 엇갈린 대각선으로 놓여 만들어져 튼튼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건너다니던 이곳 메디슨카운티 다리는 아직도 건재하건만 그들은 어디로 갔으며 다리를 만들기 위해 수고하던 이들의 아름다운 손길 땀흘리던 그 모습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구불구불한 신작로를 연결해주고 원로 영화배우 존웨인의 출생지이며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이곳, '클린트이스트우드'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 그 유명한 서부의 사나이 영화배우 '존웨인' 아저씨의 장난기 많던 그의 어린시절 모습도 이곳 메디슨카운티 브릿지에 묻어있을  이곳, 시골 개울을 가로지른 작은 다리, Holliwell 브릿지...
나와 2009년 새해에 3개국의 머나먼 여행길 20'000 km 를 넘게 달리면서도 불평을 하지 않는 제임스 오빠의 렉서스는 매디슨카운티 다리 저편에서 쉬며 이곳을 무대로 소설과 영화로 피어났던 중년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는듯 하다.

무명의 사진작가가 이곳을 방문하여 유뷰녀였던 여인과의 사람이야기가 피어났던
소설의 무대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는 정서에 민감한 청춘남녀의 심금을 울려준
영화로 그들 마음속 사랑의 번민과 환상을 간직하고 싶은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쓰라린 사랑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고 순수한 사랑에는 불륜이란 단어가 성립되지 않는 것 아니냐...
진정한 사랑은 조건이 없고 진정한 사랑은 두려움도 없는 것이라고 나는 외치고 있다.
Winterset "윈터셋" 사람들은 이곳이 너무 추워 이렇게 부르기로 하여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풀을 헤치고 고운 흙에 신발이 빠지면서 조심스레 다리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공작새도 그렇고 여인의 치마속이 그렇듯이 '매디슨카운티 다리' 아래부분은
윗모습 처럼 우아하지 않았고 육중하고 견고하지만 아름다운 자태는 아닌듯...
저편으로 흐르는 시냇물의 넓이는 15미터 남짓이며 흙탕물로서 맑은 물 보다는 어쩌면
더욱 운치를 느끼게 하는듯 하였으며 사랑의 숨결이 있는 저곳에 자신의 유골을 뿌려
달라던 여인의 소망 가운데는 잊지못할 사랑이 떠난 그 자리에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안토니퀸이 주연했던 영화 "노틀담의 곱추" 에서 보여준 종지기 곱추가 짝사랑했던 여인
"지나롤로브리지다"에 대한 이승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짝사랑을 죽어서 자유롭고 평등한 위치에서 그녀를 사랑하고자 한 애틋한 사랑이 그녀의 주검을 안고 쓰러져 죽어간 모습이 아니었나, 실천하기 어려운 사랑엔 영화속 장면에 내 모습을 담아 이루고자 함이 아닌가...
나는 이제 발길을 돌려 나의 어린시절 우상이었던 진정한 서부의 사나이 "존웨인"
아저씨 츨생한 집을 찾기로 하면서 매디슨카운티 다리와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되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신작로 길을 따라 믾은 사람들에게 마음속 사랑의 장소가 된 이곳을 떠났다.. 새로이 만든 콘크리트 다리의 왼쪽에 애절한 사랑의 무대 Holliwel "홀리웰" 다리가 있고 나는 이곳을 지나 서부의 사나이 존웨인 의 윈터셋 마을로 가기로 하였다.
매디슨카운티 다리에서 대략 십리 정도의 거리에 있는 "Winterset "마을로 갔다.

빨간색 간판으로 '존웨인 출생지" 라고 곳곳에 세워져 있고 거리의 이름도 존웨인 거리였는데, 하얀 작은 집에서 그가 태어났고 이곳서 어린시절을 살다가 서부로 가서 유명 영화배우가 되어 한 시대를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진정한 서부의 사나이 "존웨인 아저씨" 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본명은 "매리온 로버트 모리슨" 으로 1907년 5월 26일 그러니까 조선땅에서는 왜놈들에 의해 강제로 한일합방이 체결된 그 무렵에 이곳 아이오와 주의 윈터셋 마을에서는 훗날 세상 사람들에게 미국의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 역사적인 인물이 축복속에  새상에 태어났다.
훗날 지었을 집 옆에 이어져 있는 이 건물은 그의 박물관이 되었고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으며 나는 이곳서 모자에 붙일 '핀'을 두개 샀고 존웨인
아저씨의 멋진 모습이 새겨진 컵을 하나 샀는데 옛 영화 포스터에는 지난번 지나온
아리조나와 유타의 경계지역이었던 나바호 인디언의 구역에 있는 높은 바위봉우리에서
장총을 휘두르던 모습이 선명히 있어서 반가웠고 "그린베레"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실물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진 그의 동상이 한켠에 서있는데
존웨인의 딸이 주문제작하여 보내온 것이라고 한다.
이곳 뒷편에 존웨인 기념관을 새로이 지을 계획이며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바닥에
헌금 기증한 분의 이름을 새겨 기념하는 보도블럭을 이용한 헌금을 하고 있었으며
100 달러부터 759 달러까지의 샘플이 진열되어 있었으며 존웨인 아저씨를 좋아했던
제임스 오빠도 형편에 맞게 존웨인 기념관 짓는데 작은 보탬이 되려고 한다.  

어린시절 즐거움을 선사하고 용맹함을 전해준 아저씨에 대한 존경의 표시가 되리라...
자상하게도 설명해 주는 할머니와 제임스 오빠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그렇게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손녀가 경상도 구미에서 영어교사를 했었는데 한국이 너무나
좋은 나라였다고 얘기를 하더라는 손녀는 지금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세명의 딸이 기념품을 찾고 있었다.존웨인 아저씨가 세상 떠나기 전 지인이 선물한 아저씨의 밴트럭이 한편에 놓여있다. 백년도 넘은 그 시절 집들은 지금보다는 훨씬 작았으나 깨끗하게 지어져 있었다,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으나 겉에서 보기에 부억 하나에 방하나 그리고 거실에서
어린시절 꼬마였던 '존웨인 아저씨'가 침대를 놓고 생활했을 모습이 보인다.

아저씨 집 근처에선 미래의 서부의 사나이가 될 아이들이 게임을 하며 놀고 있었다.
윈터셋 마을로서 오랜 역사의 자욱이 보이는 거리가 그모습 그대로 있는데 이곳은
상가지역 이고 아저씨는 이곳서 두세블럭 떨어진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백년도 더된 집들이 겉모습만 약간 개선하여 그모습 그대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존웨인 아저씨의 이웃들의 모습이며 거리는 시골 풍이 보이지만 소박하고 깨끗한 동네...

나는 메디슨카운티 다리로 다시 돌아왔으나 이젠 그림자 길게 드리워진 붉어진 저녁노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먼길을 떠나야 한다. 만약에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면 이곳 매디슨 카운티 다리에 다시와서 미처 다 보지 못하게 되어 서운한 나머지 다리를 모두 둘러봐야겠다. 다른 길로 Des Moins "드모인'으로 가서 모텔에 가려다 아무래도 아쉬워 다시 왔던 비포장 도로를 거쳐서 큰 도시로 가기로 하였다.

소박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추억 속 "신작로" 가 마음에 닿는다. 학교를
오가며 공기놀이 하던 추억, 돌팔매를 하던 추억들이 뇌리를 스치면서 영화의
장면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다가오고 사라지는 나의 옛추억들...



이길을 지나왔다가 다시 신작로가 너무 맘에들어 다시 홀리웰 브릿지를 지나며
오던길을 되돌아 갔는데 먼곳 커브의 모퉁이에 사랑의 장소가 추억속에 간직되어
있는 "홀리웰" 다리. 한국에 있던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무지한 사람들 때문에
사장된채 아름다운 영화와 문학작품 속 무대를 추억할 수 있는 장소가 몇이나 될까...

개판같다는 정치판 인물들은 스스로 기념관을 만들기도 한다는데 진정한 마음의
양식이 되는 문학작품 속 인물들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한국인들은  정치판
인물은 그런대로 평가하지만 문학인, 연극인, 영화인, 음악인, 그리고 웃음을
선사하며 즐거움을 주던 코메디언들은 딴따라패들이라고 엎신여기는 풍조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 아닌가...

"가고파"의 고향을 기념하듯이 옛것을 찾아 발굴해서 후세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그러한 장소가 많아져야 한다. 서영춘, 김희갑 구봉서, 배삼룡, 곽규석의
기념관을 세우고 박노식, 장동휘, 독고성의 기념관도 한곳에라도 세워야 한다.

타향살이, 짝사랑을 불러 심금을 울리던 '고복수' 선생의 기념관은 어디에 있으며
그의 부인인 황금심의 기념관은 어디에 있는가?? "님의침묵"의 시인 만해 한용운의
망우리 그의 무덤에 비석이 세워진지 얼마나 되었으며, 홀쭉이와 뚱뚱이 양훈과
양석천 선생의 기념관은 어디에 세워져 있는지 내게 말을 좀 전해주기 바란다.

"돌아가는 삼각지" 배호 목소리를 흉내 내는 자들은 있으나 그를 기념하는 곳은
어디에 있는가? 북녁의 포악하고 무식한 자들에 의해 "영변의 약산 진달래"의
고향엔 원자로가 세워지고 문학을 모르는 자들에 의해 옛추억 마음의 고향들이
산산히  찢어져 버렸다. 이젠 조국의 경제가 배부를만 한데도 육의 양식 "삼겹살"
집은 번잡스러우나 마음의 양식 "문화의식"은 아직도 허기져 있는 대한민국!

그저 TV에 나와서 하는 수작이란 어린 것들이 술퍼마시던 소리나 하고 낭만이
없어져 "양아치"화 된 세대들이 안스럽게만 보여 안타까운 아이오와의 이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