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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전라도 )

당회 수련회로 모악산 주변의 종교시설을 탐방하다.

당회수련회 일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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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실시하지 못했던 당회 수련회를 3.1절인 3월 1일 실시하였다.
장소는 전북 김제 모악산 일원. 몇년전 신문에서 스크렙한 지역으로 이곳에 사대종교지역을 한눈에 볼수 있다하여 그중 개신교, 천주교, 불교지역을 탐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모악산은 산 정상에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안고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다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논산의 신도안과 함께 명당으로 알려져 난리를 피할수 있는 지역이자 각종 무속신앙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 종교단체의 오래된 시설들이 모악산을 중심으로 널려져 있었다.
우리는 3월초에 갔기에 푸르름을 볼 수 없었지만 4월의 벗꽃과 8월의 배롱나무 꽃이 일품이라 한다.

첫 방문지로 수류성당을 선택하였다. 수류성당이란 이름은 이 지역의 이름을 딴것으로 생각된다.

 

교회입구를 보니 높이 종탑으로 연결된 줄이 보인다. 실제 소리가 날지는 모르지만 종탑높이까지 사다리와 줄이 이어진것이 보였다.

 

1889년 설립되어 금년이 123주년이란 글이 강단 앞에 붙여져 있다.

 

오랜 역사도 이유였지만 이 성당은 동양권에서 신부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성당으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고해성사를 하는곳이 성당 뒷편에 지어져 있었다.

 

신부님이 앉아계신곳이 어찌생겼나 무척 궁금했는데 문을 열고 현장을 촬영해 보았다.

 

6.25동란시 신자 50여명이 죽임을 당하고 성당도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그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당 뒷편 마리아상앞에 이름모를 가시나무가 두 그루 심어져 있다. 잎사귀마다 날카로운 가시나무가 접근을 막는다.

 

수류성당에서 약 7km 이동하여 'ㄱ' 자 교회로 유명한 금산교회를 방문하였다.

 

충남에도 금산이 있지만 이곳은 전북 김제시 금산면. 이지역에 사금이 많이 나와 금산이란 지명을 가졌다고 한다.

 

이 교회는 1908년 미국이 데이트 선교사가 이 지역의 유지 조덕삼씨의 도움을 받아 설립하였다.

 

마침 창원교회에서 탐방을 왔기에 우리교회 당회원들과 함께 현재 금산교회 담임목사님으로부터 구수한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금산교회가 제일 알려진 이유는 ㄱ 자 교회. 예전엔 남녀칠세 부동석이어서 사진처럼 이곳은 남자들이 앉아서, 우편에는 여자성도들이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목사님도 여자성도가 있는 쪽은 볼수 없도록 커텐을 쳐 놓고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문제는 세례식때. 안수하며 세례를 주어야 하는데 커텐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커텐에 구멍을 내어 그리로 손을 뻗어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근데~~~ 예배당 밖에서는 서로를 보지 않았을려나?????

 

100년이 넘은 서까래가 아직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

 

교회 천장 상량문에는 성경귀절이 쓰여 있는데 남자석엔 한문으로

 

여자석엔 한글로 성경말씀이 적혀 있다.

 

이 교회엔 아름다운 미담이 전해진다. 이 교회는 만석꾼 조덕삼이 제공한 교회이며 많은 성도들은 조덕삼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으며 예배에 참석하였다고 한다. 교회 규모가 커져서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는데 투표결과 조덕삼씨는 낙선된반면, 조덕삼집에서 마부로 있던 이자익은 선출이 된것이다.

 

당시 교회의 싸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조덕삼은 이자익의 장로 선출을 축하했고 후에 신학공부를 한 이자익목사를 금산교회 담임으로 청빙하기에 이르렀단다. 물론 조덕삼씨도 후에 장로가 되었고 그의 아들중 조영호장로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고 손자는 전 국회의원을 지낸 조세형장로라 하니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감사한지....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한것을 인코딩하여 올려본다.
화면은 고화질인데 움직이며 촬영했더니 흔들림이 많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세요

 

이자익목사도 목회를 하며 어려운지역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대전 오정교회 초대담임, 대전신학교 설립, 장로교 총회장을 세차례나 역임하였다고 한다.

 

ㄱ자 교회를 중심으로 우측엔 새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입구엔 든든하게 세워진 종탑이 보인다.

 

예전 우리교회에서도 종탑이 있어 예수님 생애만큼의 33번의 종을 치던 생각이 난다. 줄이 끊어질때마다 종탑에 올라가 줄을 갈고, 페인트를 칠하곤 했었는데....

 

 

성경경시대회 대상을 받은 목사님 아들 진아가 선물로 받은 카메라를 가지고 연신 사진촬영을 한다. 내 카메라로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제법 잘 나왔다. 금산교회의 모습을 담느라 교회내부에서 앉아 사진 촬영.

 

남자석에 앉아 사진을 찍는 영광을 누린 당회원 아내들...

 

목사님 가족도 인증샷을 찍었다.

 

이날 점심은 육회맛이 최고인 지평선 청보리 한우촌에서 먹었다. 꽃등심과 육회비빔밥을 맛나게 먹었다. 이 작은 지역에 엄청 많은 외지인들이 몰려들었다. 담에 이 지역에 갈 기회가 있으면 꼭 이곳에서 육회 비빔밥을 드셔 보세요. 장소를 모르면 저를 데려가 주시면 자세히 안내하겠습니당ㅇㅇㅇㅇㅇㅇ

 

이날의 세번째 방문지는 모악산에 자리잡은 금산사.

 

이곳은 미륵신앙의 본거지 기도 하다. 미륵이란 장래에 오실 부처님을 일컫는 말.

 

입구에서 해탈교를 거쳐 금산사를 들어 갈 수 있다.

 

이곳은 몇가지 틍징이 있다. 대웅전대신 미륵전이 자리잡고 있으며 대부분의 정실은 높은 단 위에 있는 반면 이곳 미륵전인 평지에 있는것이 특이하고 입구 정면이 아니고 입구 우측에 있는것도 특징중의 하나.

 

아마 템플스테이의 시작을 이곳에서 한것이로 기억(?)된다. 오래전 이곳을 찾았을때 불교학교를 개최한다는 플랑카드를 보았기 때문...

 

 

지붕중앙에 특이한 형상의 표식이 있는 대장전.

 

절의 규모가 상당하였다. 백제 법왕때인 599년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경덕왕때 절을 크게 부흥시켰다고 한다.

 

 

 

 



미륵전은 3층규모로 지어진 우리나라 유일의 전이라고 한다. 한창 보수중이었다.

 



미륵전의 건축시기는 알수없지만 1597년 일본의 침략이 있던 정유재란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었다하니 그 이후에 지어진 것인지?? 아니면 당시의 참화를 견디어 냈는지 잘 모르겠다.

 

미륵전 내부의 삼불상. 예전엔 촬영을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사진 촬영에 좀 뻔뻔해 지기로 마음을 먹고 과감히(?) 샷을 하였다.

 

보수중인 내부모습

 

 

 

 

 

모악산 앞쪽에 자리한 넓은 원평저수지에서 당회원 단체촬영으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