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영국령 지브롤터를 가다(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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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가 있는 모로코는 결국 가질 못하였다.

높은 파도때문에 앞으로 5일간 모든 배가 출항이 금지되었단다.

우리팀이야 스페인내 다른 여행지로 대체하면 되었지만 모로코에서 한국으로 가야하는 팀들은 비행기를 이용하여

모로코에 가야하는데 그 부담은 여행객 부담이란다.

우리일행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모로코에 간다해도 돌아올 때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어 모로코는 포기.

대신 하나투어등 럭셔리 여행사가 가는 여행지로 대체를 하였다.

여하튼 여행은 하여야 하기에 5일차 아침식사를 한다.

우리는 대체 여행 첫번째로 스페인속의 영국령 지브롤터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인솔자는 대체여행에 따른 승객동의를 구하였다. 내가 페리호 승선등에 따른 경비를 환급해줘야 하는것 아니야니까 럭셔리한 장소로 대체여행하기에 환급금은 없단다. ㅜㅜㅜ

해협을 마주보며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 '지브롤터 바위'가 서 있다. 이 지브롤터 바위(높이 425m)의 북부는 낮고 평평한 모래톱으로 에스파냐의 안달루시아 지방과 이어져 있는데, 길이 4km, 너비 1.2km의 반도는 해발고도 300m의 석회암 암봉이 5개나 연이어져 있으며, 평지 부분이 거의 없다. 바위산의 절벽과 급사면 위에는 해군기지가 구축되어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바위산의 일부를 닦아 비행장을 만들었다. 또 해면을 간척하여 평지를 확대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운하를 파고, 바위산을 꿰뚫어 터널 수를 늘림으로써 이 요새를 더욱 강화하였다. '바위'의 서쪽은 항구로 이용되고 있으며, 군항 및 자유무역항으로서 붐빈다

지브롤터의 역사는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시작되는데, 기원 후에도 이 지점을 두고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민족이 쟁탈전을 벌인 격전지였다. 711년에는 이슬람교도의 타리크가 무어인을 거느리고 이곳을 점령하였으며, 이를 거점으로 하여 에스파냐로 쳐들어갔다. 로마시대까지 헤라클레스의 기둥, 칼페산(山) 등의 이름으로 알려졌던 이 지점은 이 때부터 타리크의 산, 즉 자발타리크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지브롤터라는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그 후 여기를 둘러싸고 에스파냐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공방과 쟁탈이 계속되었는데, 1704년 에스파냐 계승전쟁에 개입하였던 영국이 이곳을 점령하였으며, 그 때부터 영국의 주권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국제분쟁의 대상이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의 아프리카 작전기지가 되어 독일 공군의 폭격을 받았다. 1964년부터는 에스파냐의 영토 반환요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1969년에는 경제봉쇄가 단행되기도 하였다.

영국령 지브롤터에 거주하는 사람은 70%이상이 군인이란다. 애뗀 신병들과 기념촬영.

이곳은 명품등 다양한 쇼핑가가 자리잡고 있다. 자유시간을 준것은 쇼핑을 하란 뜻. 가족등에게 줄 선물을 몇점 구입하였다.

우린 해변가를 보기 원했지만 생각보다는 땅의 규모가 커서 결국은 포기하였다.

지브롤터 바위정상까지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다. 날씨가 좋다면 타볼만 했지만 구름이 잔뜩 낀 관계로 조망이 좋지않아 탑승 포기.

이곳은 갑자기 온 곳이어서 식사를 함께 하지 못하였다. 대신 1인당 10유로씩을 받았는데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하여 치킨을 먹도록 하였다. 일행 다 오기를 기다리는데 엄청난 포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깜짝놀라 긴장하고 있는데 일정 시간을 두고 계속 포소리가 들린다. 나중 알고보니 12시를 알리는 포소리였다.

지브롤터에는 이처럼 비행장도 있다. 스페인은 영국에게 이곳을 반환하도록 줄기차게 요구하지만 실상은 스페인도 아프리카지역의 땅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어서 큰 소리 낼 입장은 아니라고 한다.

엄청난 돌산은 지브롤터의 상징. 저 산 뒷편에 면세점등 거주지가 있다. 국경을 넘는것이기에 약식이지만 여권검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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