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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13. 터키

22-7 셀수스 도서관 (752)

에페소스거리의 끝자락에 셀수스 도서관이 위치해 있다.

도서관은 본래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자 아시아 주의 총독이었으며 대단한 애서가였던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의 

웅장한 무덤과 도서관이 통합된 형태로, 그의 아들 율리우스 아퀼리아에 의해 지어졌다. 

납골당은 1층 아래에 있으며, 대리석으로 된 무덤 안에 납으로 된 유골함이 담겨 있다. 이 건물이 곧 도서관으로서 

용도를 찾게 되자, 고대 세계 전역에서 걸출한 학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1만 2천 권에서 1만 5천 권에 달하는 

두루마리들을 연구했다.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열람실에는 아침 햇살이 가장 잘 들었으며, 지하의 터널은 아마 

술 마시는 소굴이나 매춘굴이었을 듯한 맞은편의 건물로 연결되어 있었다.

헤라클라스 문에서 크레테스 거리를 내려오면서 마주한 셀수스도서관
2세기 중반 아시아 주 총독이던 셀수스를 기념하여 지어진 화려한 석주 건물로 코린트식 열주를 가진 화려한 정문 석주가 강한 인상을 풍긴다. 정면 4개의 입구 앞에는 예지, 덕성, 사려, 학술의 상징을 나타내는 여성의 동상들이 자리하고 있어 도서관의 웅장함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도서관에 대한 설명을 듣는 중.
가장 이목을 끄는 부분은 도서관의 파사드로, 이는 현대에 와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노련하게 재건축한 것이다. 중앙 입구는 양쪽에 있는 다른 입구들보다 더 크다. 그 결과 건물이 실제 크기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효과를 자아낸다. 첫 번째 층의 기둥들 위에는 두 번째 층의 기둥들이 있고, 아마 세 번째 층도 있었을 것이다
도서관을 배경으로 또다시 커플사진.
도서관 맞은편에도 다양한 유적들이 즐비하다. 로마보다 더 많은 로마 유적이 있다는 말이 있을정도.
현재는 2층까지만 남아있는데 한층이 더 있었을지도 모른단다.
뻥 뚫린 문을 통해 건너편 산을 촬영해 본다. 이번 여행전 카메라 렌즈에 이상이 생겨 사진찍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줌부터 망원까지 되는 렌즈인데 망원을 이용할 때 초점이 맞지않아 애를 먹었다. 여행전 써비스를 받았지만 부속이 단종되어 고칠 수 없었다.
도서관 옆으로 길게 이어진 도로가 보인다. 커다란 원형극장으로 가는 길이다.
세계처음으로 만들어진 광고문이란다. 아래 좌측의 하트에 구멍이 있는것은 사랑에 상처 입은 사람을 말하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이곳에 발을 대서 이곳 발자욱보다 큰 사람은 돈을 가지고 여자를 만나라는 광고그림이란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범생들을 위한 광고라나 ???
에페소스 지역의 끝자락이다. 도로가 끝없이 이어진것을 보면 당시 규모가 얼마나 컷는지를 알 수 있다.
무려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거대한 원형극장이다. 당시 에페소스지역의 규모가 얼마나 컷던지를 알 수 있는 극장이다.
이곳에서 고향의 봄 합창을 부르고 있는데 안내원이 제지를 하여 중간 생략~~~
성경의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당시 에베소에 약 2년간 머물며 처음에는 회당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그 다음은 두란노 서원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후 에베소를 떠날 때,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남겨 두고 에베소교회를 목양하게 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의 사명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교회가 연합과 일치를 이루고, 건물로서의 교회를 넘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장하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함을 권면한다.
에베소는 우리 주님에 의해 소아시아의 7교회중에 첫 번째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첫 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로 책망을 받았다. 첫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회복하지 못한 에베소( permission :허락,허용)는 그 이름의 뜻처럼 그리스도를 허용했고 세속을 허용한 지역이기도 하다.
원형극장을 되돌아보며 에페소스 지역과 작별을 한다.
에페소스지역의 끝자락에 인어가 보인다. 아마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기에 바빳을 터이다.
인어와 검?
산자락 가득히 서있는 원형극장.
우린 고대 유적이 남아있는 파묵칼레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터키의 지형은 상당히 다양하다. 끝없는 밀밭이 펼쳐지기도 하고, 이처럼 멋진 평야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