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 마르크스, 스테반성당(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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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1일(일요일) 여행 6일째 어느덧 여행 후반부에 들어선다. 

이날은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를 구경하고 슬로베니아로 이동하는 날이다. 

크로아티아 화폐를 마지막으로 사용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거의 같은 메뉴의 아침식사를 맛있게 하였다. 저녁엔 커피, 음료등 모든것을 사먹어야 하지만 아침엔 다양한 음료가 공짜이다. 단 물은 예외~~~

지난밤엔 늦게야 숙소에 도착했기에 이처럼 아름다운 꽃을 보지 못하였다.

크로아티아의 마지막 숙소앞에서..

우리는 성 스테판 성당을 향하여 자그레브거리 중심지를 가른다.

성당인근에 주차를 할수없어 조금 외곽에 차를 주차하고 우선 점심을 먹으러 가는 중. 엽서를 사고싶었는데 이날은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상점이 쉰단다. 마침 우편엽서를 파는 작은 상점 발견. 엽서 세장을 고르고 유로를 내려했더니 자기나라 화폐인 크나만 받는단다. 오늘 슬로베니아로 넘어가야 했기에 크나 화폐는 거의 사용한 상태. 다시 식당까지 뛰어가 우리일행 주머니를 뒤져 겨우 60크나. 엽서 세장값을 얻어 다시 가게로 헐레벌떡 뛰어가니 점원 아가씨가 환하게 웃으며 엽서를 준다.

구매한 엽서는 모두 세장 크로아티아의 독특한 배경으로 구입하였다. 첫번째는 두브로브니크사진. 수도 자그레브와 두브로브니크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두번째는 이나라 최대의 국립공원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세번째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의 아름다운 자연모습니다.


식사 후 성 스테판 성전을 향하였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란다.

내부에는 대주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성당 내부에서 후레쉬를 사용하기 어려웠기에 핸드폰으로 촬영하였다.

이 성당은 1217년 완공되었으나 그 이후 전쟁등으로 파괴된것을 다시 건축하였다고 한다. 발칸은 중동의 화약고란 말이 있듯 내전, 세계대전의 피해가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쌍둥이 종탑의 축소품. 현재 한쪽 종탑을 보수중에 있었다.

성당 앞에 세워진 성모마리아상.


크로아티아는 넥타이의 시초가 된 나라입니다.

넥타이의 유래에 대하여 인터넷에 나온글을 그대로 옮겨봅니다.넥타이의 유래는 알고보면 서글픕니다..

17세기 유럽의 "30년전쟁(1618~1648)" 당시, 프랑스 왕실에 용병으로 고용됐던 크로아티아 기병대는 목에 붉은 천을 매고 전장을 누볐다고 합니다.. 돌아오기 힘든 먼 길..전장으로 출정할때 연인이나 부인 ,,어머니로부터 목을 감싸는 옷감을 정표로 받아서 마음의 위안을 삼은데서 시작됐다고 하지만..실제로는 돌아오지 못한 그 누군가의 연인과 남편, 자식을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했답니다..

출정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또 간절히 빌며 매어주던 ..남아 있는 이들의 절박함의 표현인 것입니다. 혹시 돌아오지 못하면... 어디선가 우연히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입 밖으로 내기 조차 마음아픈 간절한 식별의 도구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간절한 오랜 크로아티아의 풍습이 넥타이의 유래입니다....그후에 넥타이가 널리 퍼지게 된 사연을 살짝 퍼와봤습니다..

 전쟁 초기의 크로아티아 기병대는 임시편성된 통일성 없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전투력이 별로 높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주로 적의 측방을 기습하거나 후방의 보급부대, 민가를 습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별다른 부대 명칭도 따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냥 다들 '크로아티아인들(Croats)'이라 불렀다.

그런데 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크로아티아 기병대 내에 단합력이나 규율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규모와 활약도 점점 커졌다. 이렇게 되자 이들을 부를 정식 부대명칭이 필요했다.

그래서 프랑스군 지휘부는 이렇게 물어봤을 것이다. "너희 부대를 부를 호칭이 필요하다. 너희들을 뭐라고 부르면 되는가?"

 그리고 어느 크로아티아 출신 지휘관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우리는 '크르바타(Hrvata 혹은 Hrvat)'." '크르바타'의 프랑스식 발음 (표기)'크라바트(Cravate)'였고 이는 곧 크로아티아 기병대의 부대명칭이 됐다.

그런데 'Hrvata'는 크로아티아어로 '크로아티아인'이란 뜻이었다. 그러니 'Croats''Hrvata''Cravate'나 그 뜻은 매한가지였다.

1648, 30년전쟁이 끝났다. 파리에서는 개선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승자의 편에 섰던 크로아티아 기병대도 여기에 참가했다.

크로아티아 기병대가 말을 타고 화려한 복장으로 개선 행진을 할 때, 유독 파리 시민들의 눈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목에 맨 화려한 붉은색의 천이었다.

크라바트가 패션 아이템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루이 14세 때부터였다.

1643, 다섯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루이 14세는 30년전쟁이 끝나가는 1648년을 전후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 수단 중 하나가 왕실의 법도를 강화하고 귀족의 복식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루이 14세는 목에 희고 긴 레이스 장식이 달린 천을 매고 다니면서, 다른 이들도 이를 착용하도록 권장했다.

나중에는 왕실 공식행사 참석의 필수 복장으로 지정했다.

루이 14세는 이를 '크라바트'라고 부르면서 "크라바트 착용에는 '30년전쟁'의 교훈을 되새기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다.

물론 패션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루이 14세 개인 취향이었을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수천년 입었던 옷을 팽개치고 ...불과 백년 만에 넥타이를 매는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요금 우리의 옷 문화를 돌아보며 ... 먼 나라 크로아티아의 그 아스라한 아픈 넥타이의 사연이 먼 시간을 건너와 자꾸 짠하게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이곳엔 붉은 넥타이가 많이 눈에띈다.

거리를 지나는데 한인교회가 눈에보여 반가움에 사진을 찰칵하였다. 생각같아서는 같이 예배를 드리고 싶었지만 많이 아쉬웠고 반가왔다. 우리는 이날저녁에도 모든 일정이 마쳐진 시간 숙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거리를 지나 다음 본 것은 성 마르크광장에 위치한 독특한 교회였다.

이 교회의 지붕에는 모자이크로 두 가지 문장이 새겨져있는데, 하나는 크로아티아 왕국, 슬로보니아 왕국, 달마티아 왕국의 문장을 혼합한 것으로 이 세 왕국은 크로아티아 최초의 통일왕국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그레브 시의 문장이다. 교회에서는 로마네크스 양식과 고딕 양식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교회 내부 입장은 불가.

우리 서로 사랑해요~~~

서양에서의 돌로된길은 이제 익숙해진 길이다. 스페인에서도 이와같은 길을 많이 걸었던 곳.

건강히 구경함을 과시하는 발 모음전..

다음장소를 이동하는데 멋진 벤츠차량이 보인다. 이런 차를 몰면서 전국투어를 했으면 좋겠다.

스테판성당이 멀리 보이는 광장에서.

이곳 난간에도 수많은 열쇠들이 보인다. 사랑은 아름다운것. 절대 헤어지지 말자는 의미로~~~

이곳 거리에도 한국인이 다녀간 흔적이 보인다.

엘라치치광장에 서있는 그의 동상. 그는 크로아티아 최초로 선거를 시행한 인물이란다.

외국인 커플이 껴안고 키스를 한다.

우리도 사진찍기용 포즈를 취해보려는데 많이 어색했던지 지나가는 외국인이 웃는다.

구혼여행을 온 신장로내외는 다정히 뽀뽀를~~~

트램. 유럽여행에서 트램은 아주 유용한 교통수단인데 나는 동유럽여행시 프라하에서 야간에 한번 타 보았을 뿐이다.

화장실앞에서도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네 여인들.

이렇게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여행을 마치고 슬로베니아로 이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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