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안보현장 견학(철원, 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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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6개월 앞둔 6월 병무청에서 안보견학이 있어서 1박 2일로 다녀왔다.
병무청에 있으면서 몇차례 안보견학을 통해 판문점, 백령도등을 다녀왔지만 이번에 다녀온 철원, 연천지방은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지역이기에 또한 정년을 앞둔 여행이기에 의미가 깊었다. 대전.충남지역 모범공익과 우리직원이 함께한
안보현장 방문. 6월 9일(목) ~ 10일(금)

오전 8시 30분 출발하여 12시경 철원 고석정에 도착하였다. 한탄강 스파호텔 전면에 있는 시원한 분수가 인상적이다.



한탄강은 물길이 깊어 레프팅족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풍광이 수려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하고 영화,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각광을 받는곳이다.


귀로길에 차내에서 영화한편을 보았는데 마지막 이별장면으로 이곳 고석정이 나와서 감회가 새로왔다.


6월말로 공로연수에 들어가는 류지현씨와 함께. 나와 동갑이지만 입사년도가 빨라 나보다 6개월 먼저 공로연수에 들어간다. 이곳 여행을 끝내고 10여일동안 동해안을 따라 혼자 여행을 가려고 차비를 하고 왔다.


보기와는 다르게 물이 깊어 나루를 이용하여야만 건널수 있단다.


사극영화나 드라마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단골로 나오는 지역.



가운데가 이번 행사를 총 기획한 이용자 계장님.


고석정에서 임꺽정이 활약했던탓인지 힘을 자랑하는 임꺽정 동상이 광장에 세워져 있다.


이어서 찾아간곳은 제 2땅굴. 북한에서 뚫은 땅굴은 약 40개로 추정하나 발견된곳은 4개밖에 안된다고 한다. 1땅굴은 다음날 찾아갈 연천지역에 있다. 3땅굴은 판문점가는 방면에 있는데 몇년전 안보견학시 다녀왔었고 4땅굴은 양구방면에 있다고 한다.


땅굴이 발견되었지만 북한에서는 자신들이 파지 않았다고 발뺌을 했지만 다이나마이트 폭팔방향, 굴착방법, 배수로가 북을 향했다는 증거를 통하여 북의 소행임이 밝혀졌다.


땅굴은 약 600미터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마지막지점은 북한 접경지역과 불과 300미터 떨어진 곳이라 한다. 규모가커서 경차가 다닐정도이고 높이는 150cm가 넘었다. 오가느라 머리를 부딪히지 않으려 허리를 굽히고 갔더니 허리도 아프고.....


땅굴입구엔 북한군들이 버리고 간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행 단체사진 촬영. 몇사람은 빠져있다.



이어서 찾아간곳은 평화전망대. 예전엔 전망대가 아래에 있었으나 나무등으로 시야가 많이 가려 높은 지역에 전망대를 세우고 모노레일을 통해 이동하도록 하였다. 물론 젊은 군인등은 도보로 향하였지만....



전망대 옆엔 높이 솟은 십자가 탑이 보인다. 이곳엔 교회, 성당, 사찰이 작게 세워져 있었지만 정기적인 모임을 위해서라기보다 방문객들의 기도등을 위해 세워진듯 하였다. 이곳 교회는 영락교회에서 세웠는데 지난 연말 점등식을 하려 했으나 북한과의 관계등을 생각하여 점등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애기봉에서는 실시 한것으로 안다.


북한지역을 만들어 놓은 조형물. 실제 눈 앞에 조형물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신라말 궁예가 세워썬 도성터가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 몇년전 왕건이란 드라마를 통해 궁예에 대한 이야기가 소상히 소개된 적이 있었다.


전망대 외부에서 촬영이 가능하다하여 북한지역을 멀리 잡아본다. 가장 뒷편에 높이 솟은 산은 6.25동란중 김일성의 지휘탑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이곳 철원평야의 탈환을 위해 백마고지전투등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데 철원평야를 빼앗긴 김을성이 이곳 지휘탑에서 3일간 울었다한다.


사진 중앙이 궁예성터이다. 멀리 왼편이 북한지역인 낙타봉.



우리직원중 막내 하미경시와 함께.


날씨가 좋아 북한지역을 볼 수 있어서 다행. 예전엔 비무장지역이 4km였지만 땅굴발견등으로 인하여 지금은 줄어들었다는것 같다.


이어서 찾은곳은 월정리역 인근의 두루미관.






우리나라에서 최 북단에 자리잡고 있다는 월정리역사.


"철마는 달리고 싶다" 휴전과 함께 더 가지 못한 열차의 잔해가 역사 건너편에 전시되어 있었다.


월정리역사는 서울과 원주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데 인근의 철원역은 당시 서울역보다 규모가 더 컷다고 한다.


예전 디젤 기관차시절 보아왔던 것. 도착하는 열차의 기관사가 이곳에 가방같은것을 더져 놓고 출발지점에선 다른것을 집어들고 가던 생각이 난다.


철로는 상징적으로 100여미터 놓여져 있었다.



우리회사에서 정말 모든일에 최선을다하는 열성파 김윤식씨.


다른 사람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할때는 구도를 어떻게 잡으라고 설명해줬는데 김윤식씨는 아주 좋은 구도로 사진을 촬영해 준다. 작년인가? 직원들에게 사진촬영법 3등분할에 대한 안내문서를 보내준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참 좋은 구도로 사진을 찍어주어 마음이 흐믓하였다.




월정리역사 내부이다. 사무가구등은 없었지만 옛 모습이 깔끔하게 남아있다.




전면에 보이는 잔디밭은 남한쪽에서 보면 잔디밭이지만 북한쪽에서 보면 시멘트 담이다. 탱크를 저지할 목적으로 지어진곳.


인근에 있는 군 막사. 새로 지어진때문인지 새로운 막사의 모습을 보인다.


백마고지 가는길에 세워져 있는 얼음창고.


길 옆쪽엔 지뢰밭임을 알리는 표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6.25동란시절 묻어둔 지뢰가 아직까지 가끔 터진다고 한다.


철원 노동당사.


해방후 철원이 공산치하에 있을때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KBS열린음악회도 열였던곳.


첫날 마지막 일정으로 간 백마고지 유적지


초병하나가 나와서 안내를 소상히 해주어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린 백마고지를 가는줄 알았는데 백마고지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기에 갈 수 없었고 바로 앞쪽에 이처럼 유적비와 전시관등을 건립하여 놓았다.


 


백마고지 유령비와 기념탑.



백마고지는 1952년 10월 아군과 적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곳으로서 10일동안 주인이 24회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 국군에서는 김종오소장(당시 29세)의 지휘하래 맹열한 전투를 벌인끝에 고지를 탈환하여 철원평야를 획득하는데 큰 공을 세운곳. 당시 아군은 3,500여명의 사상자가 있었는데 위령비 앞에 당시 전사자 명단이 세겨져 있다.


백마고지 전투는 교과서등을 통하여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전투. 10일간 치열한 전투로 인하여 산 높이가 1미터정도 깍여졌고 온통 파헤쳐진 산의 모습이 백마와 같다하여 백마고지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사진은 아마 비무장지대에 세워진 백마고지 표지석인것 같다.




약관 29세의 나이에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종오장군의 유품. 장군은 30세에 육군사관학교장등을 거쳤으나 애석하게 1966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당시 무수하게 퍼부어졌던 포탄 탄피를 모아 새겨논 김종오장군과 전투하는 국군의 모습.


10차 전투에서 우리가 잘 알고있는 육탄 세용사덕에 전쟁을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육탄 세용사의 조형물도 당시 탄피로 만든것이라 한다.




기 기념탑 둘레는 당시 전투후 살아있는 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60여년의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유명을 달리하는 용사들이 생기기에 몇년마다 명단을 다시 정리한다고 한다.


당시의 전쟁을 기념하여 세운 상승각. 종은 경주의 에밀레종을 본떠 만들었고 단 높이가 다섯개인것은 제 5사단을 상징하여 세웠다고 한다.


사진으로보는 백마고지. 중앙에 아군 GP가 세워져 있다.


최 전방이기에 상당부분이 사진촬영금지지역이어서 많이 아쉬웠다. 상승각에서 본 백마고지 전경.아래 세워진 작은 돌탑이 전망대란다.


우리가 1박을 한 백학마을. 예전 백령도, 판문점등을 갔을때는 합숙소건물에서 10여명씩 잠을 잤는데 그곳도 시설이 정비되었고 이곳도 마을에서 숙소를 아주 깔끔하게 건축하여 숙박에 조금도 어려움이 없었다.



백학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한 백숙으로 배를 가득 채웠다. 음식 모두가 정갈했는데 그중에서도 김치맛이 일품이었다. 마지막날 순대집의 김치도 맛있었는데 이곳은 청정지역이어선지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저녁엔 다과와 과일, 술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취침.


다음날 아침. 지도 오른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숭의전과 좌측에 보이는 경순왕릉등을 구경하기도 예정. 우리 직원 박진씨가 있는데 이곳에도 박진이란 이름이 보여 반갑다(?).


신라 마지막왕 경순왕릉이 연천지역에 있었다. 왜 신라왕중 유일하게 경주에서 벋어나 이곳에 묻히게 되었는지는 사진을 참조.


왕릉입구에 작은 돌무덤 같은곳이 보이는데 왼편위쪽 표지석은 땅굴 현장을 알아보기 위한 시추파이프가 묻혔던 곳이라 한다.


초라한 왕릉을 보고 고려에 항복한 왕이어서 무덤이 초라한가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경주왕릉을 보면 커다란 무덤이 많이 있는데 고려태조 왕건은 자신의 무덤을 아주 검소하게 만들라고 했단다. 왕건의 영향으로 고려왕들의 무덤은 아주 검소하였는데 이조시대엔 다시 왕릉이 큰 것을 볼 수 있다. 경순왕은 신라 멸망후에도 90세까지 생을 유지했는데 고려 4대왕(?) 시절에 생을 마감하였기에 고려시대 풍습에 따라 무덤을 검소하게 꾸몄다고 한다.


사실 경순왕은 백성들을 더 희생시킬 수 없어 왕건에게 투항했다고 한다. 이곳 경순왕릉이 발견된것은 고려를 넘어 이조 영조때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에도 한참이나 잊혀졌다가 수십년전 한 군인이 우거진 잡초속에서 경순앙 비석을 보고 상관에게 알려 이처럼 묘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문화해설사 최병수씨. 내가 참 좋아하는 우리교회 장로이면서 사학교수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최병수장로님과 이름이 같아선지 더 친근감이 간다. 참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많은 이야길 해주었는데 모두 머리에 담지 못하여 아쉬웠다.


전후 사정에 관계없이 신라 마지막 비운의 왕이 혼자만 동떨어져 이곳에 묻혀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신우회 회원이기도 한 김정래 감독관과 함께.


경순왕의 비석인데 연천지역의 한 가정에서 빨래판으로 사용하던것을 발견하여 왕릉곁에 세워놓았다.



경순왕를 오가는 길옆에도 지뢰표지판이 널려있다. 사실 경순왕릉 바로 인근이 비무장지대이기도 하다.


이곳은 김신조 침투로. 1968년 1월 박대통령을 암살하려고 31명의 북한 특수부대원이 침투했던 현장이다. 물론 당시엔 비무장지대였지만 비무장지역이 축소된 관계로 다가가 볼 수 있었다.



당시 이곳은 미군 담당지역이었는데 북한특수부대원은 이곳을 통해 남하하였다. 당시 수상한 장병들의 행진에 의문을 갖았지만 특수부대 훈련중이란 말에 대부분 속아넘어갔다가 나무를 하러가던 몇 형제의 신고로 신분 노출.


31명중 29명사살. 1명 자수(or생포). 1명은 월북하여 북한군 최고의 대접과 함께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고 한다. 노무현대통령 방북시 기념품을 전달한 북한 최고위급 군인이 당시 월북했던 간첩이라 한다. 자수한 사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김신조.


이어서 상승OP. 처음 땅굴이 발견된 곳인데 규모도 가장 작았던것 같다.


좌측 중앙의 희미하게 보이는 흰 점이 1땅굴 발견장소. 예전엔 그곳까지 관람이 가능했다고 하나 지금은 OP에서만 볼 수 있었다. 사진 중앙의 길이 땅굴 갔던 길. 이곳은 핸드폰도 터지지 않았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 숭의전. 이조시대의 왕의 위패를 모신곳이 종묘인데 이곳 숭의전은 고려 왕들의 치제를 하였던 곳.


숭의전 올라가는 길.


의전 이야기를 자료집에서 발취하여 첨부물로 담아본다.


고려왕은 30대가 넘게 이어졌는데 처음 이곳에 모셔진 왕의 우ㅐ패는 8개. 왕이라하여 모두 같은 왕은 아니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중 4개의 위패는 다른곳으로 이전하고 지금은 고려태조, 현종, 문종, 원종등 네분만 모셔져 있다.


그 옆에는 고려충신 16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기에 모두 사진에 담아보았다. 궁예를 폐하고 왕건을 세운 신숭겸,


감찬장군의 위패가 세번쩨에 자리한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위패는 첫번째에..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 모두들의 이름이 새롭기만 하다.


이래서 역사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문학사의 말에 공감을 가져본다. 공부를 좀 더 많이 했으면 더 흥미롭고 감동적인 시간이 되었을 터인데...







점심은 순대국밥. 해설사 최병수씨와 이번 체험자 모두를 위한 막걸리 건배.


비록 짧은 1박 2일이었지만 평소 볼 수 없었던 접경지역을 해설사의 소상한 설명과 함께 다녀올수 있어서 이를 주관한
복무관리과에 참 감사를 표한다.

또한 경순왕릉과 숭의전을 통해 숨겨진 우리 역사에 대해 알수 있었던 것도 감사. 기회가 되면 팀을 만들어 다시 와보고
싶은곳. 철원, 연천.  여행을 좋아하는 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가 볼곳이 너무 많다는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또한 성지순례시에도 그랬지만 여행전 그 지역에 대한 사전 공부는 필수. 이번에도 미리 공부를 했으면 더 좋은 시간이 
되었을텐데 그리 못하여 아쉬웠지만 좋은 문화해설사님 덕분에 많은 이야기 들음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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