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 史庫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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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여 집에만 있던 최권사가 바람을 쐬고싶다하여 적상산을 찾았다.

산 정상까지 차로 오를수 있기에 드라이브로는 최고.

또한 몇차례 가려했으나 찾지못하였던 적상산 사고를 찾아볼 요량으로 차를 몰았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때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한 전국의 사고가 불에 탄 후, 춘추관을 제외한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등에 새로운 사고를 설치하게 되었으나, 당시 우리나라 북방이 위험하여 광해 6년(1614) 천혜의 요새로 이름난 무주의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묘향산의 실록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인조 19년(1641) 선원각을 세워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을 보관하게 되었다. 그 후 일본에 의해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300여 년간 국가의 귀중한 국사를 보존했던 우리나라 5대 사고중 하나였다. 현재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사고터는 안타깝게도 적상산 양수발전소댐을 건설하면서 상부댐 안에 수몰되어 안국사와 함께 저수지 윗쪽으로 이전하였다. 적상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절벽 주변에 유난히도 빨간 단풍나무가 많아서 가을철이면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듯 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에는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축성을 건의하여, 그 계기로 축성하였다는 적상산성이 있다. 그리고 고려 충렬왕3년(1227년)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안국사 및 사고를 지키기 위한 호국사찰로서 조선시대 인조 21년(1643년)에 창건한 호국사터가 있다. 현재의 안국사는 이 호국사터에 자리하고 있다.

 

적상산 양수발전소를 향하여 가파른 오르막길을 향해 가다보면 터널이 나오고 거의 정상에 왔음을 알려주는곳.

 

 

이곳 양수발전소시설용량은 60만 kW(30만 kW 기기 2대 보유)이다. 1988년 4월 15일 착공하여 1995년 5월 23일 준공하였으며, 발전소 건설에 투여된 사업비는 총 2,997억 원이다. 적상산에 건설한 상부댐은 높이 60.7m, 길이 287m, 저수량 372만 ㎥이고, 적상산 아래에 건설한 하부댐은 높이 42.6m, 길이 234m, 저수량 668만 5,000㎥이다. 무주양수발전처는 적상산 위의 상부저수지에서 산 아래 하부저수지로 물을 떨어뜨려 발전하는 양수발전소이다. ‘양수발전’이란 수력발전의 일종으로, 전기가 남는 밤에 하부저수지의 물을 상부저수지로 퍼 올려 두었다가 전기수요가 많은 시간에 떨어뜨려 발전하는 방식인데 잉여전력을 사용하므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발전효율이 높아진다. 2001년부터 한국전력공사에서 분리된 한국남동발전(주)이 운영해오다가 2011년 1월부터 한국수력원자력(주)으로 이관되었다. 발전소본관은 하부저수지(무주호) 옆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지하에 폭 21m, 높이 49m, 길이 98m 규모의 지하발전소가 있다. 지하발전소 견학도 가능하며 발전소 인근에는 전기와 전력산업에 대한 갖가지 전시를 하는 무주전력홍보관이 있다.

 

발전소 주변에 버찌가 무성하게 열려있다.

 

 

몇사례 사고를 찾았으나 입구를 발견 못하였는데 사고를 향하는 가파른 층계가 보이는데 출입금지 사슬이 메어있다. 연유를 알수없어 사슬을 넘어 올라가보니 사고 옆으로 작은 사잇길이 보인다.

 

입구에 표식도 없고 작은 소로여서 여간하여서는 찾기 어려운 길.

 

사고로 향하는데 안내인이 따라 나온다. 그리고 한사람뿐인 나를 위해 사고에 대하여 소상히 설명을 해준다.

 

원래 적상산사고는 양수발전소의 저수지 안에 있었다고 한다. 물론 불에 타 건물의 흔적만 남아있던 상태. 양수발전소가 건립되어 사고를 상부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사고는 좌, 우 두개로 되어있는데 우측것은 실록을 보관하는곳.

 

 

좌측것은 족보를 보관하였다고 한다. 용이한 보관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것이 습기인데 1층을 기둥이 떠 받치게 하고 창문은 2중창. 옆면의 기다란 처마는 비가 건물내로 들이치지 않게하기 위함이란다.

 

 

실록관에 들어가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요즘 옛것 듣는 기분이 솔솔하여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실록보관 행열이다. 선왕의 행적을 적은것이기에 선왕은 하늘에 계시지만 행열은 왕의 행열 그대로를 그렸다고 한다.

 

 

물론 이곳에 실록은 보관되어 있지않다.

 

실록을 보관했던 의궤.

 

실록은 전국 네곳에 보관하였는데 임진란시 전주사고외의 것은 모두 일본인가 가져갔기에 전주사고본을 보고 네부를 더 필사하였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북한이 가져가고 그곳에서도 실록에 대한 한글화작업이 우리보다 먼저 진행되었다고 한다.

 

사고 하단부분이다. 열대지역을 가면 짐승들때문에 1층을 떠올린 집들을 볼 수 있는데...

 

옛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몇년전 부부합창단에서 다녀온 강화도. 정족산 사고는 아니고 외규장각모습.

 

 

경기전 옆에있는 전주사고이다. 당시엔 사고인줄도 모르고 그냥 구경하였던곳. 앞으로도 목적이 있는 여행을 계획해보기로 하며 짧은 여행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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