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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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말 광주 공연 참석을 하면서 안동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안동은 한번도 간 기억이 없는데 구장로님도 그렇다하여 날짜를 조정하여 12/26 안동여행을 떠났다.

 

아침 9시 출발. 날씨는 쾌청. 시내는 그래도 포근한 편이었는데 중간 속리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데 찬 바람이 엄청 분다.

 

하회마을 도착즈음엔 바람도 잔잔하여 구경하기는 최적의 날씨..

 

앉동하면 대표음식이 찜닭과 안동고등어인데 이집에선 두가지를 함께 한다하여 박장로님이 인터넷으로 이집을 예약하였다.

 

8명이 75,000원에 점심상을 대한곳. 값은 저렴하였으나 내용은 푸짐하지 않았다. 찜닭, 고등어를 각각 2인분씩 시킨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음식은 부족하지 않은편...

 

하회마을로 가는데 꿀타레를 판다. 밀가루와 꿀을 배합하여 계속 늘려만든것인데 순간에 16,000가닥이 된다고 한다. 보기완 달리 맛도 괜찮은편...

 

 

하회마을 셔틀버스가 도착한곳은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여황 방문을 알리는 기념관 앞.

 

 

당시 여왕의 친필사인과 펜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S자로 휘감아 도는곳에 조성된 마을로서 600년간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다.

 

영국여왕 박문 기념관 전경모습

 

만물박사 박장로님이 오늘 갈 일정을 소개한다.

 

마을 시내버스도 있고 교회도 있다. 전통가옥에 이런곳이 있다는것이 조금 의아... 하지만 하나님은 어느곳에도 계시기에...

 

 

여러 고택은 이처럼 안내판이 세워져 이해를 돕고 있었다. 하동고택은 1836년 용궁현감을 지낸 류고목이 지었다고 한다.

 

안동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일컬어지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와가(기와집)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하겠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짚으로 담장에 올릴것을 짓고있는 촌로모습

 

ㅎㅎ 이곳엔 붕어빵과 오뎅을 파는 가게도 있다. 붕어빵틀이 적어 오래 기다려서 맛나게 먹는중.

 

많은집엔 현재도 사람이 살고있기에 문이 닫혀 있었다. 그중 몇개의 고택은 개방하여 구경할수 있도록...

 

옛 담장이 이채롭다.

 

김화식장로님과 송경임권사님은 금년 65세로 교회공직 은퇴.

 

이곳은 서애 류성룡선생의 고택으로 현재 후손이 살고 있단다. 이곳은 측면의 문이고 정문으로 들어가라는 안내표지.

 

류성룡선생 고택 가기전 양진당에서 기념촬영.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06호로 지정되었다. 이 고가는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으로 류성룡(柳成龍:1542∼1607)의 형인 류운룡(柳雲龍:1539∼1601)의 종택으로 풍산 류씨 종가이다. 류운룡의 아버지인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1515∼1573)의 고택이라는 뜻으로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양진당’이라는 당호는 류운룡의 6대손인 류영(柳泳:1687∼1761)의 아호(雅號)에서 유래하였다. 하회 북촌택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세웠고, 건물 둘레에는 쪽마루와 난간을 설치하였으며, 대청 정면 3칸에는 4분합 여닫이문을 달았다. 마치 누(樓)와 같은 인상을 주는 별당(別堂) 건축으로 두리기둥을 사용하고 기둥 위에는 공포를 받쳤다. 공포의 구조는 이익공(二翼工)집과 같은 계통이며, 내부는 오른쪽 3칸이 대청이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인데, 대청의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대들보·종량(宗樑)·충량(衝樑)은 통나무를 다듬어서 그대로 사용하였다. 윗부분의 가구재(架構材)를 받치는 대공(臺工)은 제작수법이 우수하고, 마루대공은 파련대공처럼 만들었다. 개인 주택으로는 규모가 큰 별당이다.

 

 

엘리자베스여왕이 기념식수한 구상나무는 충효당(류성룡선생고택)앞마당에 심겨져 있었다.

 

 

 

보물 제414호.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유성룡(柳成龍)의 고택으로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잘 남기고 있다. 묘좌유향(卯坐酉向)으로 자리잡은 이 주택은 서향 전면으로 줄행랑채를 두고 그 안쪽으로 ㅁ자모양의 안채와 一자모양의 사랑채를 연이어 건축하였다. 솟을대문이 선 줄행랑채는 광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마주 보이는 사랑채는 一자형 평면으로 왼쪽에서부터 사랑방과 대청, 방과 마루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ㅁ자형으로 동북쪽에 부엌을 두고 ㄱ자로 꺾여서 안방ㆍ대청ㆍ건넌방을 두었다. 건넌방 앞에는 마루와 두 칸의 온돌방과 부엌이 있으며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또, 부엌 앞에는 찬방ㆍ고방ㆍ헛간이 있고 중문간 행랑채와 연속되어 있다. 사당은 사랑채 동쪽의 따로 쌓은 담장 속에 건축되어 있다. 이 충효당의 구조는 보수 때의 개작으로 보이는 견치석쌓기에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주두없이 납도리를 받치고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 소로를 두어 납도리의 장여를 받친 민도리소로수장집이다. 가구는 오량이며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사랑방과 대청의 전면과 측면에는 계자 난간을 설치하였다. 안채는 견치석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대청 전면에는 두리기둥을, 나머지에는 방주를 세웠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얹고 끝에 쇠서가 없는 첨차형의 부재를 두고 다시 보다 큰 첨차형의 부재를 받쳐 대량과 납도리의 장여를 받치게 된 몰익공식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또, 기둥과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방형의 화반을 두어 납도리 밑의 장여를 받치고 있다. 가구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 위에 걸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있다. 종보 위에는 삼각형의 판대공에 첨차와 소로를 짜 넣어 종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충효당 한켠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어 류성룡선생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류성룡선생은 임진왜란의 영웅으로 이순신을 선조에게 천거한 사람이다.

 

 

이 집 이름은 달봉이네.

 

달봉이네 가게 내부이다.

 

마을을 잠시 벗어나 낙동강변으로...

 

박정남장로님과 조정화권사님.

 

김덕점권사님이 시무룩하다. 구장로님이 핸드폰을 김권사님에게 맡기고 다니다 충효당에서 헤어졌기때문. 핸드폰이 없어 연락이 안되고 김, 박장로님이 찾으로 다녔으나 허탕. 그냥 입구에서 만나길 기대하며 구경하고 다니는 중.

 

낙동강변에는 그네와 널도 있었다.

 

 

 

부용대는 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안동하회마을의 서북쪽 강 건너 광덕리 소나무 숲 옆에 있는 해발 64m인 절벽이다.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정상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은 연꽃을 뜻한다. 처음에는 북애(北厓)라 했는데 이는 하회의 ‘북쪽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옥연정사와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배를 타고 건널수도 있지만 그것은 생략.

 

 

 

 

이제 입구로 가는 길. 봄 벚꽃이 아름다울것 같은 벚나무 길이다.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이곳으로 오는 구장로님 극적 상봉하고...

 

안동은 하외탈로 유명한데 이곳에 세계탈 전시회가 있어서 구경중.

 

경북 안동시 풍산면 하회마을에서 만들어져 내려오는 목조탈로, 2개의 병산탈과 함께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음 국보 제121호인 하회탈은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재료는 오리나무가 많이 쓰였고, 옻칠을 하여 정교한 색을 내어 해학적 조형미가 잘 나타나 미적 가치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일반 평민들 사이에서 많이 성행했으며, 당시의 지배층인 양반 계층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지녔다. 특히 전통역할극인 별신굿놀이에서 하회탈이 많이 사용되었다.

 

커플로 하회탈을 써보기도...

 

 

 

 

 

 

유럽의 가면모 있었다. 대부분 끔찍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조금 양호한 편.

 

전시장 입구의 상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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