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여행 25-23 표트르대제 여름궁전(분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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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0일째인 7월 18일. 월요일. 우린 에스토니아 국경을 넘어 러시아에 도착하였다.

에스토니아에서 러시아로 넘어서는 국경지대. 오래된 성채가 보이는 등 국경같지 않은 풍경들이 보인다.

러시아로 넘어서자 자작나무가 풍성히 보이기 시작한다.

시베리아 철도까지 이어질듯한 기찻길도 건너고...

우리의 숙소는 표트르대제의 여름별궁과 작은 길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숙소가 여름별궁과 가까운건 시간적으로 큰 행운이었다. 페테르부르크 시내에 숙소가 있을경우 여름별궁까지 오는 시간이 한참이었기 때문이다.

여장을 풀고 여름별궁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지나 문이 닫혀있기에 외관만 둘러보는데도 내일이 기대가 된다.

담장사이로 내부의 푸른 숲도 찍어보고...

숙소내부이다. 귀족들이 사용했던 방처럼 멋스러운 분위기가 있는 방이었다.

아침식사는 간단하게..

관광시작하기에 이른 시간이어서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잔잔한 호수가 아름답다.

호수를 보니 백조의 호수가 생각난다. 이번 여행중 옵션에 포함되었지만 가이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여름별궁이 인근에 있기에 아침에 많은 여유시간이 있었다.

우린 호텔 로비 창고에 우리집을 내려놓고 도보로 별궁을 향하였다.

표트르대제는 러시아 황제(재위 1682~1725). 1697년에는 사절단과 함께 네덜란드, 영국, 독일 등지를 순회하면서, 조선술, 포술을 배우는 한편, 각국의 풍속, 제도를 연구하고 귀국한 뒤 귀족에게 서유럽 식의 풍속 관습을 강요하였으며, 율리우스력을 채용하는 등 적극적인 개혁에 착수하였다. 1700년 발트 해 진출을 기도하여 북방 전쟁을 벌였고, 1711년 투르크와의 싸움에 패하였다. 그러나 1721년 뉘스타트 조약에서 발트 해 연안을 획득하여 숙원을 풀었다. 1722, 1723년 페르시아에 원정하여 카스피 해 서안을 병합하였다. 이러한 전쟁은 농민에게 군사, 운수 등 계속적으로 무거운 부담을 지워 초기에는 농민의 반란을 야기하였으므로 그는 내외의 곤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강력한 행정 조직의 확립을 목표로 절대주의 국가를 확립하였으며, 교육 문화에도 힘을 기울여 러시아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여름별궁은 표트르대제가 여름에 묶기 위하여 만든 것인데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전을 본 후 그를 표방하여 만든 궁전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가보질 않아 규모등은 모르겠지만 이곳 여름궁전의 위용도 엄청나다.

입구에서 궁전까지 이르는 길 중앙엔 분수가. 양옆엔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즐비하다.

여름궁전의 방은 무려 1,700개나 된다고 한다. 우리는 겨울궁전에서 내부를 보기로 하고 이곳에선 외부만 관람.

건물 뒷편에는 거대한 분수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분수공원은 별궁 뒷편에서 멀리 바다까지 이어져 있었다.

오전 11시에 이곳에서 분수쇼가 있다하여 그 시간까지 전면 이곳저곳을 구경한다.

유럽 최고의 궁전을 짓기위해 표트르대제은 온 힘을 다한듯 하다.

아랫쪽에서 바라본 분수공원. 모두 7계단으로 조성되어 있고 황금색의 다양한 조각들이 놓여져 있다.

바닷가까지 가기엔 힘들것 같아 중간지점에서 양쪽을 보며 사진촬영.

양옆에 조성되어 있는 푸른숲도 아름답기만 하다.

분수쇼가 시작할 즈음이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분수대앞으로 모여든다.

드디어 우렁찬 음악과 함께 분수가 물을 뿜기 시작한다.

양 옆에 있는 작은 곳에도 분수쇼가 시작된다.

현대식 분수는 음악에 맞추어 다양한 분수가 연출되지만 예전 그대로의 방식인 이곳 분수쇼는 물만 분출하고 있다.

분수쇼를 마지막으로 여름별궁 구경을 마친 우리들은 점심후 겨울궁전을 보러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페라 하우스 건물이다. 전면에 보이는건 옛 건물. 운하 건너에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

새로 지어진 오페라하우스이다.

점심은 중국식 코스요리.

발레의 나라답게 발레그림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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