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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대전)

바다로 달리는 인간기차.

 

 

울산에 사는 카친친구이며 詩人인 정성희씨가 내 이름과 역시 카친 이회경씨 이름을 붙여가며 동화를 지었단다.

초등학교시절 있었던 펙트를 글로 쓴것인데 작품성은 둘째 치더라도 내 이름을 넣어 지은 동화였기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옮겨본다.

 

 

바다로 달리는 인간 기차

 

,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어머, 쟤 좀 봐. 쟤가 거꾸로 달리고 있어"

". 저리 가야지. 그쪽으로 가면 어떡해?"

 

거꾸로 달리는 학생을 향해 소리치지만 소용없습니다. 사랑반 학부모 도우미 선생님으로 위탁된 회경 선생님도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사랑반은 특수학급으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몸과 마음이 아픈 친구들로 구성된 장애 학생 반입니다. 바로 그 사랑반 친구 6학년 영준이가 백군 응원 깃발을 뽑아 들고 한 손으로는 바지를 움켜잡고 골인선이 아닌 반대쪽을 향해 히죽히죽 웃으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한 학부모가 다가가서

"얘야, 저리 달려가야지"

해도 영준이는 막무가내로 한 방향을 고집합니다. 회경 선생님은 압니다. 지금 영준이 머릿속이 어떠한지를. 영준이는 지금 바다로 향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고추잠자리 떼가 지금 영준이에게는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 떼이고 펄럭이는 만국기는 뱃머리에 펄럭이는 돛대입니다. 백군 깃발을 들고 달리는 자신은 지금 멋진 선장이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영준이는 늘 그랬습니다. 비가와도 바다를 생각하고 하늘이 유난히 푸른 날도 바다 생각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이따금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교실 밖 이탈을 성공한 날은 밑도 끝도 없이 교문 밖으로 내달리고 버스가 보이면 무작정 무임승차하여 어디론가 사라져서 선생님을 곤경에 빠뜨리곤 했습니다. 그럴 때는 멀리 낯선 도시에 가 있기도 하고 정말로 바닷가까지 가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학부모 상담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마침 영준이 어머니께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학부모 상담을 받으러 오셨습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영준이 어머니랑 인사를 나누는 그 사이 영준이가 교실 밖으로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회경 선생님은 맨발로 영준이 뒤를 따라 달렸습니다. 학교 밖으로 놓치면 큰일입니다. 유월 햇볕이 뜨겁습니다. 맨발에 닿는 운동장 인조 잔디는 뜨겁게 달아올라 발바닥이 닿을 때마다 따끔거리기까지 합니다. 영준이는 뒤를 돌아보며 잡아 보라는 듯 싱글벙글입니다. 이리 가면 저리 빠지고 저리 가면 이리 빠지고 미꾸라지처럼 쏙쏙 빠져나가며 잡기 놀이할 기세입니다.

 

"영준아, 엄마 오셨잖아! 엄마가 영준이 먹으라고 아이스크림도 사 오셨던데 아이구, 영민이랑 진주가 다 먹어버리겠네"

이런 말이 통할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일단 아이스크림으로 유혹을 해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오늘은 바다로 가려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교문 밖으로는 관심 없고 오직 잡으러 오나 안 오나 잡기 놀이 재미에 푹 빠진 듯합니다. 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회경 선생님은 지금 슬슬 지쳐갑니다. 그때였습니다. 본관 동쪽에 위치한 급식실에서 마침 급식 담당선생님께서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회경 선생님은 영준이가 눈치 채지 못하게 급식 담당 선생님에게 손짓 발짓으로 도움 요청을 하셨습니다. 통하였습니다. 회경 선생님은 영준이를 급식실 쪽으로 몰아붙이고 그러면 급식 담당선생님은 기다렸다가 뒤에서 영준이를 잡기로 작전을 주고받았습니다. 계획대로 영준이와 급식 담당선생님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습니다. 급식 담당선생님은 자세를 한껏 낮추고 두 팔을 벌린 채 영준이 곁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오셨습니다. 이때다 하고 확 잡으려는 순간 영준이가 눈치를 채고 방향을 틉니다. 순간 놀란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영준이 모습에 회경 선생님과 급식 담당선생님은 놓쳤다는 허탈감보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주저앉아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영준이도 똑 같이 주저앉아 웃습니다. 아무래도 녀석은 지금 잡기놀이 이 한 판이 신나 죽겠나 봅니다. 다시 작전을 짭니다. 이번에는 회경 선생님이 급식실 뒤편으로 영준이를 몰아넣으면 급식 담당 선생님과 급식실 직원들이 급식실 뒷문으로 나가서 영준이를 덥쳐 잡는 작전을 짰습니다. 역시 힘을 합치니 영준이는 잡혔습니다. 회경 선생님은 땀범벅이 되었지만 영준이는 생생합니다. 회경 선생님은 영준이 손목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교실로 향했습니다. 영준이가 빠져나가려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잡히지 않은 손으로 잡힌 손목을 잡은 회경 선생님 손을 때리며 꼬집기 시작합니다. 6학년 남자 아이의 손맛은 맵습니다. 회경 선생님 손이 금새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그래서 영준이의 나머지 손도 잡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입으로 물어뜯습니다. 힘으로는 영준이가 벅찬 회경 선생님은 속수무책입니다. 간신히 교실까지 끌고 들어왔습니다. 잇발 자국이 난 회경 선생님의 벌겋게 달아오른 손등을 잡으며 영준이 엄마가 안절부절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영준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습니다. 영준이가 교실로 들어오자 영민이가 벌떡 일어나서는

"아흐~~~"

합니다. 영민이는 4학년 남자아이입니다. 피부가 얼마나 곱고 잘 생겼는지 귀공자 같습니다. 그런 영민이가 자폐를 앓고 있다니 마음이 더 아픕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영준이와 달리 영민이는 동물원을 꿈꾸나 봅니다. 수업에 집중 잘 하다가도 느닷없이

"~흐엉"

하고 호랑이 소리를 내어서 담임선생님과 회경 선생님을 한바탕 유쾌하게 웃깁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웃지 않습니다. 영민이가

"~~흐엉. 어흥!"

해도 영준이 진주 지훈이 대한이 아무도 반응이 없습니다. 이것이 자폐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과 회경 선생님은 영준이가

"~흐엉"

할 때마다 빵 터집니다. 곱상하게 생긴 녀석이 교실 정적을 깨는 호랑이 소리를 낼 때마다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진주가 영민이를 쳐다봅니다. 영민이와 진주는 나이가 같습니다. 그런데 영민이는 4학년이지만 진주는 이제 2학년입니다. 진주는 덩치도 유난히 작아서 학교 입학을 10살에 했기 때문입니다. 진주는 지금도 마치 작은 요정 같습니다. 어찌나 작고 귀여운지. 저 맑고 깊은 눈동자 속에 무슨 생각을 갖고 있어서 자폐를 앓고 있나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습니다. 영민이는 오늘 수학수업을 하는 날입니다.

 

"영민아, 2 더하기 3?"

회경 선생님이 물으면

"5"

하고 영민이가 대답을 합니다. 영민이는 암산까지도 어느 정도 되고 있는 수준입니다. 더하기 빼기를 가르치고 있는데 어떤 때는 암산이 어찌나 빠른지 ', 정말 자폐 맞아?'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오우, 영민이 오늘 잘 하는데? "

하고 회경 선생님이 칭찬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흐엉"

합니다. 아마도 영민이가

"아흐엉~!"

하는 것은 기분 좋다는 심리적으로 아주 편안하다는 뜻이기도 한가 봅니다. 영민이에게 몇 개 수학 문제를 풀라하고 진주에게로 다가가는 회경 선생님. 진주는 이제 국어 낱말 익히기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사랑반에서 가장 진도가 안 나가는 아이입니다. 진주는 입과 눈과 머리가 항상 제각각 흩어진 퍼즐 조각 같은 아이입니다.

"우리 진주 오늘은 얼마나 잘 하나 볼까?"

먼저 회경 선생님은 카드를 넘기며 낱말 열개를 먼저 읽으면 진주가 따라 읽게 합니다. 낱말 열개를 10회 반복해서 먼저 읽고 따라 읽게 한 후 진주 혼자 읽도록 하여보면 단 하나도 읽어내지 못합니다. 이런 진주와 회경 선생님 사이에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진주야, 우리 여름 방학이 오기 전까지 이 낱말 열개는 꼭 익히도록 하자" 하면

"네에"

하고 대답은 합니다. 교실 뒤쪽에서는 담임선생님께서 5학년 대한이와 6학년 영준이를 데리고 수업이 진행 중입니다. 6학년에는 지훈이도 있지만 지훈이는 거의 특수학교로 수업 받으러 가고 우리 학교에는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옵니다. 오늘도 지훈이는 특수학교로 갔나 봅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온 영준이를 위해 바닥에 편안히 앉아 바다 이야기책을 펴놓고 바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영준이가 신났습니다. 벌떡벌떡 일어나서 배의 핸들을 돌리는 시늉도 합니다. 좀 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대한이도 오늘은 담임 앞에서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영준이를 쳐다봅니다.

 

아침부터 날씨가 잔뜩 흐린 날이 있었습니다. 비가 한바탕 쏟아질 듯 교실 분위기가 무거워 내려앉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들도 무엇에 짓눌린 양 하나같이 책상에 엎드려 멍하니 창밖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수업하기 힘들겠구나.' 회경 선생님은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랑반 친구들은 날씨 변화에 아주 민감합니다. 하늘이 너무 맑고 쾌청하여도 안 되고 오늘처럼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집중이 아예 안 됩니다. , 희한한 일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 아이들이야 말로 감수성이 진짜 풍부한 아이들 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음악 시간을 갖기로 합니다. 어차피 집중이 안 되어 진도는 못 나갈 테고 차라리 아이들 기분 좋아지도록 노래를 부르자 합니다. 담임선생님께서 피아노를 치십니다. 회경 선생님은 아이들 하나하나를 찾아다니며 눈 맞춤 입맞춤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아빠하고 나 하고 만든 꽃 밭에

 

따라하는가 싶으면 꺼지고 따라하는가 싶으면 꺼지고 노래 한 곡이 제대로 불러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하나 둘 책상에 엎드립니다. 영민이를 바로 앉히고 나면 진주가 엎드리고 진주를 바로 앉히고 나면 대한이가 엎드리고....지훈이는 오늘도 결석입니다. 영준이는 교실 뒤쪽 문고에서 책을 꺼냈다 꽂았다 제멋대로입니다. 피아노를 치시던 담임선생님께서 피아노를 덮습니다. 회경선생님과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들, 그냥 자율시간 줍시다“.

 

이런 날은 자율시간 주어도 떠들지도 않으니 차라리 그편이 낫겠습니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아이들은 이런 우중충한 날은 떠들지도 않는답니다. 움직임의 반경도 좁습니다. 가만히 놔둬도 조용히 엎드린답니다. 담임선생님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적으며 일을 하시고 회경 선생님은 교실 뒤 바닥에 앉은 영준이에게로 갑니다. 영준이는 바다에 관련된 책을 꺼내놓고 혼자 보고 있습니다. 다시 영민이 자리에 왔습니다. 납작 엎드린 영민이와 눈높이가 맞게 엎드려봅니다. 영민이가 회경 선생님 얼굴이 보이자 고개를 살짝 듭니다. 그리고는 눈을 끔뻑거리며 쳐다봅니다. 회경 선생님이 영민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습니다. 그러자 영민이가 다시 머리를 책상 바닥에 내려놓으며 따라 빙그레 웃습니다. 둘은 그렇게 마주보았습니다. 영민이도 회경 선생님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한참을 그러더니 녀석이 스르르 눈을 감습니다. 어쩌면 동물원으로 갔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잠든 영민이를 두고 회경 선생님은 진주에게 갑니다. 진주의 까만 눈동자 속에서 회경 선생님은 빙그레 웃고 있습니다. 진주도 보고 있을까요? 회경 선생님 눈동자 속에서 똑같이 미소 짓고 있는 저 요정 같은 아이가 진주 자신이라는 것을요.

 

, 운동장에서 함성이 요란합니다. 사랑반 선생님께서 교문을 막 빠져나가려는 영준이를 보셨습니다. 본능적으로 영준이를 향해 다급히 달려갑니다. 힘이 좋은 남자 선생님이라 영준이를 번쩍 들어 안고 방향을 돌리며

"영준아, 그쪽으로 가면 안 되지. 바다로 가려면 이쪽이야. 얼른 선생님 허리 잡으렴. 바다로 가자"

영준이가 바지를 잡고 있던 손으로 담임선생님의 허리를 잡습니다. 그러자 영준이 바지가 줄줄 흘러내립니다. 선생님은 목에 걸고 있던 호르라기 줄을 풀어 영준이 바지 한쪽 귀퉁이를 불끈 뭉쳐 쥐고 감아 묶습니다. 영준이 모습은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마치 허리에 혹이 난 혹부리 영감 같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영준이 손을 선생님 허리를 잡도록 하고 선생님은 골인선을 향해 달립니다. 5학년 영민이가 그 모습을 보고 달려 나와

"~흐엉"

하고는 영준이 허리를 잡습니다. 진주도 달려 나옵니다. 지훈이도 나옵니다. 교실에서 목이 터져라 영준이를 부르던 회경 선생님도 운동장으로 달려 나오셨습니다. 뭉그적뭉그적 거리던 대한이도 나오고 사랑반 총 출동입니다. 인간 기차가 만들어졌습니다. 담임 뒤에 영준이 수민이 뒤에 영민이 영민이 뒤에 진주 진주 뒤에 지훈이 지훈이 뒤에 대한이 대한이 뒤에 회경 선생님. 인간 기차가 백군 깃발을 휘날리며 운동장을 돌아 골인 지점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언제 나와서 붙었는지 영준이 엄마 영민이 엄마 진주 엄마...엄마들까지도 허리에 허리를 잡고 달리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골인선을 걷고 돌아서시던 골인선 선생님의 눈에 긴 인간 기차가 한 대 구불구불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선생님이 다급하게 호르라기를 불며 골인선 도우미를 하던 6학년 여학생들을 불러 모읍니다. 골인선이 다시 쳐졌습니다. 기차가 본부석 앞을 지나고 있었고 운동장에서 점심을 먹으러가기 위해 부모님을 찾으러 흩어지던 아이들이 우르르 줄줄이 기차에 붙습니다. 기차는 자꾸자꾸 길어집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인간기차의 머리가 골인선을 통과했습니다. 선생님이 돌아서며 영준이 팔을 잡고 높이 듭니다. 함께 기차가 되었던 사랑반 친구들도 회경 선생님도 그리고, 그 뒤에 학부모님과 학생들 모두가 팔을 들고 만세 만세를 부르며 환호성을 지릅니다. 나무 그늘에서 도시락을 꺼내던 학부모와 학생들도 모두 하나가 되어 박수를 칩니다. 골인선 담당 선생님께서는 영준이를 비롯한 사랑반 친구 모두의 손목에 1등 도장을 찍어 주십니다. 사랑반 친구들은 손목에 찍힌 도장을 서로 보여주며 환히 웃습니다. 담임선생님과 회경 선생님도 마주보고 씨익 웃습니다. 만국기 소리를 내며 펄럭이고 있습니다. 정오의 해가 빙긋이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