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여래삼존상 보원사지 그리고 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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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몸 상태가  좋지않아 처남댁에 와 있기에 토요일아침 서산을 찾아 장모님을 뵈고

오후엔 운산면 일대를 구경 나섰다.

첫번 다녀온곳은 국보84호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상.

 

10여년전 이곳을 찾았을땐 삼존불상만 있었는데 인근에 용현리 휴양림이 생기며 맑은 계곡에 피서나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삼존불상을 보러 오르는 길.

 

 

가분수 모양의 바위아래 삼존불상이 새겨져 있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는 백제의 분위기를 가장 거리낌 없이 표현하여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이 있다. 운산면 일대 사람들에겐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이 일반에도 알려지게 된 것은 1959년이다. 당시 부여박물관의 홍사준 관장은 보원사지의 유물을 조사하러 이 마을에 와 있었다. 주민들에게서 서산마애불에 대한 얘기를 들은 그는 국보고적보존위원회의 김상기, 이홍직에게 보고했고, 그 후 현장 조사와 연구를 거쳐 1962년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으로 지정되었다.

 

세 부처는 가운데에 있는 것이 본존인 석가여래입상이고, 그 왼쪽이 제화갈라보살, 오른쪽에 미륵보살이라고 본다. 그러나 당시에 성행했던 신앙에 따르면 석가세존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미륵보살이 협시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석가여래불의 옷맵시에서는 중국풍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크게 뜬 눈과 활짝 웃는 미소는 고전적인 양식이면서도 틀림없는 백제의 미소라 할 수 있다. 그 미소가 ‘신비한 미소’라고 불리는 것은 부처의 표정이 빛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양쪽의 협시 보살들도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여자다운 모습이라서 ‘살짝 토라진 본부인에 의기양양해진 첩 부처’라는 장난스러운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나 편안하게 만드는 너그러운 이런 웃음이 고구려의 미소를 백제화한 한국 불상의 독특한 형태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바위를 지붕삼아 오래도록 제 모습을 간진하고 있는 삼존불상.

 

 

 

 

삼존불상을 나서며 멀리서 그 자태를 다시 잡아본다.

 

서산9경.
그러구보니 7,9경만 빼놓고는 모두 가본듯 하다.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

예전 삼존불을 찾았을때는 보원사지 존재를 몰랐었다. 절의 규모가 상당히 컷음을 알수있는데 한창 복원중.

 

 

 

서산 보원사지에 있었던 사찰에 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내력을 알 수는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또는 삼국통일 이전 백제시대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신라시대 최치원(崔致遠)이 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따르면, 화엄사·해인사 등에 더불어 신라 10산 10사찰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보원사지의 면적은 10만 2886㎡이다. 일대의 절터는 모두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기와조각 등이 넓게 산재해 있어, 많은 사찰 전각들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석조(石槽)·당간지주(幢竿支柱)·5층석탑(五層石塔)·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법인국사보승탑비(法印國師寶乘塔碑) 등이 있으며, 이러한 유물을 통해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후 이곳에서 백제 때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이 출토되었고, 부근에 백제 때의 마애불로 유명한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이 있어, 삼국통일 전 백제시대부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의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도 이곳에서 출토된 것이다. 사적 제316호로 지정되었다.

 

남아있는 주춧돌을 보면 당시 사찰의 규모를 알수있을듯.

 

 

이곳에서 산길을 넘어 1.5km를 가면 개심사인데 왕복하기가 자신없어 차량을 이용하여 우회하기로 하였다.

 

 

 

 

보원사지 당간지주앞에서 해설을 듣고있는 아이들.

 

이곳에서 발굴된 철조여래좌상이다.

 

 

서산목장을 지나 개심사로 가는길.

 

목장 한가운데에 저수지가 있어 다용도로 사용할수 있을듯 하다.

 

가는길을 보니 오래전 병무청시절에 다녀온기억이 생각난다.

 

산 중턱에 있는 한우떼들.
처음엔 그림인줄 알았다. 이곳에 한우종축장이 있는까닭.

 

상왕산 개심사 입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651년(의자왕 11)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창건하고 개원사(開元寺)라 하던 것을 1350년 처능(處能)이 중창하며 개심사로 고쳤다. 그 후 1475년(조선 성종 6) 중창하였으며 1955년 전면 보수하였다.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충남문화재자료 제194호인 명부전(冥府殿) 및 심검당(尋劍堂) 등이 있다.

간밤에 내린 비때문에 골자기에 물 흐르는 소리가 정겹다.

 

 

완만한 돌계단이 운치를 더해준다. 주말임에도 인적이 드물다.
나중 알고보았더니 우회도로를 이용하여 사찰입구까지 차량이 올라갈수 있었다.

 

상왕산은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데 부처님을 상징하는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하여 절 입구에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개심사의 규모는 작았지만 충남의 4대 사찰중 하나라한다.

 

 

 

 

 

 

  

 

절 담벽에 나무를 가로 박아 놓았는데 내겐 십자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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