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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9. 대마도

대마도 찬양선교 4-3(대마도에서의 1박및 이즈하라거리)

 

교회건너 신사 좌우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접근금지. ㅋㅋ

 

이곳상점은 9시또는 10시에 문을 닫고 있었다. 상점, 숙소, 교회가 모두 5분거리에 있기에 자유로이 상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슈퍼마켓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 살것은 없었지만 그냥 시간을 보내느라 둘러보았다.

 

숙소에 들어와 컵라면을 끓이려고 물을 올려놓고 세면등 짐정리를 하고 커피포트를 보니 보온에 등이 들어와있다. 물 끓는 소리를 못들어 100볼트를 사용하는 이곳이기에 시간이 지체되나 기다렸지만 도무지 끓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불이 이곳에 들어와야 정상일듯 한데...(이 사진은 추후 촬영한것임). 카운터에 전화했더니 노신사가 들어온다.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으로 물이 끓지 않는다하니 커피포트에 손을 넣어보더니 무슨소릴 하고 가버린다. 물은 끓지 않지, 라면은 먹어야 겠지... 컵라면을 들고 프론트에 가니 그 노인분이 가스불에 물을 끓여준다. 라면을 들고 숙소로 오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최권사가 안에 있었지만 문이 잘 열리지 않아 몇번 실강이 하다가 또 프론트에 가서 노인분을 불러 만능키를 가져왔더니 최권사가 간신히 문을 열었단다. 라면을 먹고 미지근한 물이라도 먹으려 커피포트 물을 따라보니 물이 뜨거운게 아닌가? 우리가 알지못하는 사이에 물이 끓고 보온상태로 계속 있었던것. 그것도 모르고 프론트에 계신 노인을 세차례나 불러댔으니...컵라면때문에 한바탕 쇼를 한 첫날저녁은 그리 저물어 갔다.

 

교회에서 우리 일행들에게 선물로 준 비누 한셋트. 정성에 감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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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 창가에 다가서니 오랜지나무가 눈에 뜨인다. 카메라를 챙겨들고 아침 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물론 최권사는 침대를 지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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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작았고 가옥들도 오래된것들이 많았다. 대마호텔도 지은지 30년이 되었단다.

4-3

미용실도...

 

18세 미만은 죄송하지만 출입금지.

 

 

방화벽이다. 오래전 나무로 불을 지폈을때 큰 불이 일어나 도시 대부분이 불에 탓었다고 한다. 그래서 불길이 인근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이처럼 돌러 벽을 쌓은것. 지금은 전기를 사용하여 그런 염려가 없지만 아직까지 도시 인근에 방화벽이 많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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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거리, 충분한 주차장, 그리고 소형차들.

 

 

 

 

매화꽃은 2~3주 더 있어야 핀다는데 일부 성급한 꽃들도 보인다.

 

 

 

이날이 2/27일. 2/28일이 대마도 시장 선거일이란다. 거리 유세때문에 도시가 시끄러울 지경.

 

 

극우단체에서 시위중인듯. 욱일승천기를 들고있다.

 

아침에 간간히 비가 내린다. 교회앞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목사님과 석별을 나누었다.

 

이곳 수로는 대부분 바닷물이 이동하는곳이다.

 

한국 춘향전을 소개한 소설가 나카라이 기념관.

 

화려한 필체로 인기있는 소설가였으며 부산에서도 일을 한적이 있다고 한다. 미남이여서 흠모하는 여인들이 많았단다.

 

고종황제의 딸 덕혜옹주가 이곳대마도 백작과 정략적 결혼.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파탄에 이르렀지만 덕혜옹주가 시댁에 온것을 기념하여 기념비도 세워져 있었다.

 

한때는 일본 지도가 이처럼 그려졌다고도 한다. 한국, 중국등을 억누르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소설가 나카라이와 그를 연모했던 이치요. 그녀는 25세의 나이에 요절했다고 한다.

 

대마도엔 미녀도 많았단다. 제 1회 일본 미인대회 진에 대마도 여인이 뽑혔단다. 그 이후 일본 본토사람들이 대마도 미녀들을 데리고 가서 지금은 미녀가 남아있지 않다나??????

 

다음 간곳은 대마도에서 가장 큰 신사.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제대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수령 700년 된 거목.

 

 

 

 

일본은 노인복지시설이 잘되어 있는곳. 그래서 한국에서 많이들 견학을 오기도 한단다.

 

조선통신사 묘소앞에서.. 통신사의 이야기는 아래 주소를 클릭.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548&cid=40942&categoryId=33383

 

 

 

이어서 찾아간곳은 덕혜옹주 봉축기념비.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하다 이혼을 당한 후 일본 정신병원에 강금되었다가 1962년 박정희대통령이 귀국시켜 창덕궁 낙선제에서 생활하다 1989년 한많은 세상을 하지했다고 한다. 덕혜옹주는 곧 영화화되어 상영예정이라니 꼭 관람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