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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경상도)

대구 근대로 여행 3-3 청라언덕, 이상화, 서상돈, 김광식

이곳에는 문인들의 자취도 이어졌다.

 

블레어 선교사주택 인근이 청라언덕의 시발점이다.

 

언덕이라야 몇십미터...

 

이 사진은 교회 남전도회에서 선교여행 왔을때이다. 청라언덕에서 동무생각 노래를 제창하며 옛 생각에 젖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곳 청라언덕에서 박태준의 동무생각이 탄생한곳이다. 학창시절 만인의 애창곡이었던 동무생각. 작곡가가 흠모했던 신명학교 여학생을 백합화에 비유하여 곡을 썼고 이은상선생이 작사한것.,

 

계산성당 옆에는 이상화, 서상목고택이 있는데 그 한켠에 계산애가란 전시장이 있었다. 옛 사회상을 담은 전시관이다.

 

 

이상화 고택. 요즘 인터넷 검색을 하면 빙상선수 이상화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곳은 민족저항시인 고택.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년 〈개벽〉 6월호에 발표된 시. 그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둔찬의 선물」의 시편들이 갖는 저항의식과 함께 국토예찬(國土禮讚), 즉 자연에 대한 애정이 서정적 정조로 형성화되어 있다. 자조적(自嘲的)이고 회의적이며 영탄적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 이 민족의 비애를 나타낸 작품으로 저항의식의 응결된 투명성(透明性)보다는 비탄과 허무, 저항과 애탄이 깔려 있다. 비록 나라는 빼앗겨 얼어붙어 있을 망정, 봄이 되면 민족혼이 담긴 국토, 즉 조국의 대자연은 우리를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국토는 일시적으로 빼앗겼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봄은 빼앗길 수 없는 몸부림, 피압박 민족의 비애와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식을 주조로 하고 있다.

 

 

 

 

두 고택은 이처럼 빌딩숲 사이에 존재한다.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곧바로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어 갔다. 1907년 2월 22일, 서울에서 김성희(金成喜)·유문상(劉文相)·오영근(吳榮根) 등이 국채보상기성회를 설립하였다. 이는 전국 각 지방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국채보상운동을 총괄하는 기구로서, 그 취지와 회칙을 발표하는 등 합법적인 단체로서 형식을 갖추었다. 회칙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본회는 일본에 대한 국채 1,300만 원을 보상함을 목적으로 한다. 2. 보상 방법은 국민 의연금을 모집한다. 단 금액은 다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3. 본회에 의연금을 바치는 사람은 본회의 회원으로 인정하고 씨명과 금액을 신문에 게재한다. 4. 본회와 목적을 같이 하는 각 단회는 서로 연합하여 목적을 달성하는데 힘쓰기로 한다. 5. 의연금은 수합하여 위의 액수에 달하기까지 신용 있는 본국 은행에 임치한다. 단 수합 금액은 매월 신문을 통하여 알린다. 6. 본회는 목적을 달성한 후 해산한다.

 

 

 

김광석 (金光石[1], 1964년 1월 22일[2] ~ 1996년 1월 6일)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으며, 노찾사 1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일반 대중에까지 알렸으며,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통기타 가수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96년 1월 6일 자살로 일생을 마쳤다[3]. 향년 31세 (대한민국식 나이 향년 33세). 대표곡으로는 〈사랑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서른 즈음에〉, 〈그날들〉, 〈이등병의 편지〉,〈먼지가 되어〉 등이 있다

 

2007년, 그가 부른 노래 중 하나인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었다 2008년 1월 6일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노래비는 대학로의 학전 블루 소극장에 세워졌으며 조각가 안규철이 제작했다 또한 2010년 그가 태어난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에는 그를 기리는 '김광석 거리'(행정명:김광석다시그리기길)가 조성되어 350미터의 길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시인 정훈교의 시를 비롯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김광석거리는 동산의료원에서 2km떨어진곳에 있었다. 큰 길 사이 석축을 따라 음악과 그림이 존재한다.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김광석길을 물으니 장소를 알려주던 주차요원은 볼것도 없는데 무엇하러 가느냐 했지만 그건 가치관의 차이..

 

 

 

 

 

 

구경하는동안 점심시간이 되었다. 대구는 음식 입맛이 맞지않아 전국 평등한 자장면을 먹기로 하고 보기에 큰 규모의 중국집을 찾아 삼선짜장을 시켰는데 대전의 복록수보다는 한참 아쉬운 맛에 ~~~~~

 

 

두시간 남짓 함께한 대구의 거리에서 유용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