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양림에서의 선교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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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계획했던 장소이며 오늘 여정의 마지막은 광주 양림동.

어느 월간지에서 양림동의 선교지(근대문화유산)가 소개되어 예전부터 다녀올 계획을 가졌었다.

그런데 막상 출발하려하니 책을 찾을수가 없다. 할수없이 인터넷을 통하여 선교지역 몇군데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첫번 여행지는 수피아여고. 행정처에서 근대문화유산 관람을 요청하였더니 현재는 수업중이라 내부는 볼수없고 대신 외부는 얼마든지 관람및 사진촬영이 가능하단다.

 

1927년 건립된 이 건물은 윈스브로우(Winsborough) 여사가 받은 생일 헌금으로, 건축을 전공한 남장로회 서로득(Swinehart) 선교사가 건축하였다. 좌우 대칭의 중복도형으로 정면 출입구에 설치한 아담한 돌출 현관인 포치가 인상적이다. 이 돌출 현관 위 삼각형의 박공지붕과 이를 받치는 투스칸 오더(Tuscan Order)의 원형 기둥은 다른 학교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윈스브로우홀 전경모습이다. 드라마 각시탈을 이곳에서도 촬영하였다고 하는데 마침 쉬는시간인지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홀을 울린다.

 

운동장에서 바라본 윈스브로우홀 전경.

 

 

이어서 찾은곳은 학교 맨 위쪽에 위치한 수피아홀.
이곳역시 학생지도실등으로 현재도 사용하고 있었다.

 

수피아홀은 미국 스턴스 여사(Mrs. M.L.Sterns)가 세상을 떠난 친정 동생(Jannie Speer)을 추모하기 위하여 기증한 5,000불로 세운 건물이다. 중앙의 현관 포치 위쪽에 박공을 두어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1층과 2층 사이에 돌림띠로 장식하고 수직의 긴 창을 반복적으로 배치하였다.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붉은 벽돌이 아니라 회색 벽돌로 지은 것이 특징이다. 광주 지역 개신교 선교의 근거지이자 여성 교육의 요람으로 꼽히는 수피아여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수피아홀은 상담실등으로 사용하는데 학생모습이 보이지 않아 2층까지 올라가 보았다.

 

2층에서 내려다본 광경. 입구의 가지런한 구두는 나의것..

 

100년전에 건축한것답지 않게 세련된 모습이다.

 

 

수피아여고에는 두개의 강당이 있는데 이곳은 1928년도에 지어진 소강당.

 

천장모습이 낯익다. 1960년대에 지어졌던 우리교회의 지붕모습도 이러한 형태여서 더 친근감이 돈다.

 

 

대강당과 광주 3.1운동 기념탑.

 

 

커티스 메모리얼홀은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꼭 내부를 보고 싶었지만.....

 

 

1925년 건립
이 건물은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한 전라도 지역 선교의 개척가인 유진벨(Rev. Eugene Bell, 1868~1925, 한국어 이름: 배유지) 목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예배당으로 이용되었다. 전체적으로 중앙을 기점으로 대칭을 이루고 곳곳에 원형 창과 첨두아치 형상의 창문을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규모는 작지만 장식적인 요소가 많고 건축 기법이 우수한 건축물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건축물등의 내용이 소상히 나오기에 블로그 작성에 큰 도움이 된다.

 

수피아 여고를 나와 다음 이동장소는 양림교회.
이곳역시 근대문화유산이 있었는데 처음가본곳은 어비슨기념관.

 

한국명 어비신(魚丕信). 1893년(고종 30) 의사 빈튼의 뒤를 이어 부인과 함께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한국 최초의 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의 경영을 맡았다. 1895년에는 기구를 개편하고, 운영비는 미국 장로교 해외 선교부에서 책임지도록 하였다. 1904년에는 광혜원을 세브란스병원으로 개편, 1917년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창립하고 평양(平壤)의 숭실전문에서 농학을, 연희전문학교에서는 수학과 자연과학을 교수하는 등 한국 개화기의 교육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어비슨기념관과 오웬홀중간에 양림교회가 건축되어 있었다. 금년 12월이 100주년되는 역사적인 교회이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교회당 모습을 하고 있다.

 

출입구에서 바라본 전면부 모습.

 

양 창측에 목사, 장로등의 사진과 간단한 행적이 쓰여있는 현수막이 보인다. 모두 이 교회와 연관이 있는 인물인듯...

 

교회 종 모습.
예전 우리교회에도 이와같은 종이 있었는데 종탑에 올라가 주기적으로 밧줄을 교체해주던 기억이 난다.
종은 모두 서른세번 울리는데 이는 에수님의 나이를 뜻하는 횟수이다.

 

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 내에 있는 오웬기념각은 배유지 목사와 함께 전남 최초의 선교사로 들어와 광주에서 순교한 오웬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 친지들이 보낸 기금 4,200 달러로 1914년에 세워진 연면적 434평방미터(부속건물 포함)인 양옥건물이다. 이 건물은 평면 형태로 보아 예배당 및 집회실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되나, 지금은 기독병원 간호전문대학의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측면에서 바라본 오웬기념각과 양림교회. 이곳 문화유산은 대부분 홀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는데 이곳은 유난히 각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이유는 ???

 

양림교회를 떠나 호남신학교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동중 옛 문인들의 생가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상으로 패스

첫번 간 곳은 은단풍나무 이야기.

낙뇌로 고사된 은단풍나무밑둥을 우월순선교사 사택옆에 보존하고 있었다.

 

 

우월순선교사 사택모습. 들어가는 문이 굳게 잠겨있어 아쉬움만 가득.

 

 

선교사 사택앞에서 포즈를 잡아보았다. 요즘은 Q마크가 보편화되어 핸드폰으로 Q마트를 찍으면 그곳에 대한 내용이 소상이 나온다.
이제 명승지등의 관람도 핸드폰시대이다.

 

 

인근에 다양한 선교사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선교사 무덤도 있다는데 찾질 못하였다.

 

 

선교사 사택에서 바라본 간호학교및 양림교회.

 

학교 벤취를 마지막으로 오늘 화순, 양림의 시간여행을 마치었다.
양림동은 넉넉한 시간에 방문하면 다양한 문화를 접할수 있을듯 하다. 다음을 기약하며 대전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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