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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충남)

공세리성당

당진에 갈 기회가 있기에 이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공세리 성당을 다녀왔다.
네이버 백과사전을 통하여 공세리 성당의 유래를 알아본다.


1895년 6월에 설립되었으며 당시에는 15개의 공소가 있었다. 공세리는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였던 공세창()에서 유래한다. 충청도는 한국 최초로 천주교복음이 전파되면서 한국 천주교가 창설된 지역이다. 그 결과 많은 공소가 생겼는데 공세리는 공소가 있었던 곳이다. 1895년 드비즈 신부가 공세리천주교회 첫 신부로 부임하였고 아산군, 천안군, 공주군, 진천군을 관할하였다. 드비즈 신부는 서울 주교관으로 부임하였다가 1897년 다시 공세리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하였고 1930년까지 재임하였다.

충청도 지역의 천주교 초기 본당 중의 하나로, 충청도에서 두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성당이다. 1895년 6월 예전의
합덕성당 전신인 양촌성당()에서 분리 설립하였으며, 현재는 대전교구 소속이다. 

공세리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인 아산·서산·한산·청주·옥천·회인 등 40개 마을에서 거두어들인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이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충청도 내포() 지역의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초창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로 불린
이존창()이 천주교를 전래한 곳이다. 

이후 이 지역에서는 수많은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끊임없는 박해에도 신앙 활동이 단절되지 않아, 신앙 부활의 요람지요 전교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천주교 신앙이 허가된 이후에는 가장 주목받는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인 이웃마을 양촌()과 지금의 예산읍() 간양리인 간양골 지역에 각각 성당을 설립하였다. 이 무렵 공세리 인근에는 여러 공소가 있었으며, 신자 수도 적지 않았다. 이들 공소는 본래 간양골 본당에 속하였으나,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간양골 본당이 폐쇄됨에 따라 양촌성당 관할 아래 놓였다가, 이듬해 드비즈 신부가 공세리에 부임하면서 본당 설립을 하게 되었다. 

처음
관할 구역은 충청남도 아산·천안·공주 일대와 충청북도 진천 일대로 매우 넓었으나, 이듬해 공주성당이 설립되고, 1901년 안성성당이 설립되어 지역이 분리됨으로써 아산 지역만 관할하게 되었다. 1894년 천주교 선교사들이 처음 상륙하여 선교를 시작한 첫 전교지임을 기념하기 위해 동네 한가운데 가정집을 성당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1895년 제3대 본당신부로 재부임한 드비즈 신부에 의해 공세창고터가 성당과 사제관 건물로 쓰였고, 1921년 근대식 성당을 완성하였다. 현재의 강당 건물은 1956년에 신축하였으며, 1970년에는 수녀원 건물이 지어졌다.
이인하(), 김동욱() 신부 등이 본당신부로 활동하였다. 

1895년에 충청남도의 첫 성당이 성일륜(애미리오) 신부에 의해 공세리에 지어졌는데 이것이 공세리천주교회의 최초 건물이다. 1922년에
고딕식 2층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94번지에 있다. 


단풍철도 지나고 낙엽도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 앙상한 나무가지 사이로 성당이 보인다.


이곳은 성당 아래편에 있는 시설인데 용도는 잘 모르겠다.

앞마당 언저리에 개가 있는데 개 집이 독특하다.

성지순례시 보았던 십자가에 달리기까지의 예수님 형상모습이 새겨졌다.

교회 뒷편으로 일주를 하면서 이러한 12개의 조형물을 볼 수 있었다.




110년이 넘는 건물이지만 이 즈음에 지어진 다른 성당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공세리 성당모습

교회 뒷편에서 기념촬영,


















성당구경을 마치고 당진 화력발전소 인근 대호방조제를 향하였다.


이곳 왜목마을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소이다. 바로 이곳 언덕에서 두 경관을 볼 수 있는데 날씨를 종잡을 수 없어서 일몰때까지 있어야 하는지 망설였다.

언덕에서 바라본 추수후 논의 모습. 하얀뭉치는 볏잎을 모아놓은 것인데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서해안쪽으로는 구름이 걷히는것 같아 일몰때까지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대호방조제 주변에 아름다운 등대도 보였다. 하지만 일몰의 근사한 장소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녀보았지만 마땅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수평선 언저리에 이처럼 섬이 자리하고 있기에 수평선 너머 일출보기는 포기. 대호방조제에 오르니 해가 섬 사이로 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일몰 촬영은 실패. 대신 이처럼 색다른 일몰 사진을 담을수 있었다.